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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존재론

나만이 정답이 아닙니다. (더불어 철학 시작하기 4)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1. 5. 19.

'아집'에서 벗어난다는 것, 그것은 참된 자유를 누린다는 것입니다. 가장 벗어나기 어려운 족쇄가 어쩌면 아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만이 답이고 나만이 위에 있고 나만이 앞서야 한다는 생각, 그것으로 부터 자유롭기는 참으로 힘듭니다. 오랜 수행을 한 수도자로 자신만이 답이라 생각하곤 합니다. 자기 수행만이 답이고 자기가 더 많이 깨우쳤고 자기가 더 많이 안다는 식으로 말이죠. 오랜 시간 철학을 공부한 이도 신학을 공부한 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참으로 건방진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아집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몰라도 아집에서 벗어나진 못한 것이죠. 

마음 없이 어떤 것도 없고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 있다는 불교 교리가 있습니다. 바로 '유식사상'(唯識思想)입니다. 우리말로 조금 풀어 설명하면 '오직(唯) 의식(識)' 뿐 뜻이 됩니다. 이 말은 원래 '유식무경'(唯識無境) 혹은 '만법유식'(萬法唯識)이란 말의 줄인 말입니다. 만법유식이란 모든 형상은 오직 마음의 작용이란 뜻이기에 사실 유식이란 두 글자로 그 원래 뜻을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줄인 말 같습니다. 종종 불교를 이야기하며 사용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도 유식사상과 관련된 말입니다. 모든 것이 마음이 지어낸 것이란 말이니 말입니다. 유식사상을 완성한 이는 4세기 인도 간다라의 승려 세친(世親, Vasubandhu, 316∼396)입니다. 그가 쓴 『유식삼십론송(唯識三十論頌)』은 유식사상의 정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유식삼십론송』은 세상의 모든 것은 가설(假設)된 것, 즉 환영(幻影)에 지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말로 논의를 시작합니다. 유식사상에 의하면 사실 그렇게 충격적이지도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의식, 즉 사람의 마음에서 생겨난 것일 뿐인데, 그것이 마치 객관적인 절대 진리인 듯이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되니 말입니다. 어느 종교는 어찌해야 한다고 하고, 또 다른 종교는 또 어찌해야 한다고 하고, 서로 다투고 싸웁니다. 서로가 서로를 오답이라 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만 정답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식사상에 의하면 그 모든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아집에 사로잡힌 이들이 서로의 아집 속에서 남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멸시하며 저지르는 어리석은 짓일 뿐입니다. 어느 수도자가 온 평생 마쳐 깨우친 것도 잔인하게 이야기하면 그저 그의 의식 속에서 만들어진 그의 깨우침일 뿐 그것이 타인에겐 그리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고 오히려 해악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그것이 정답이니 그 정답만을 강요하며 그것이 정의와 진리를 위한 싸움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사실 아집에 지나지 않는데 말입니다. 

선이니 악이니 하는 모든 것들도 결국 아집의 결과물입니다. 결국 한 개인의 의식 속에서 만들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절대 진리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아집이 그에게도 모두에게도 독이 됩니다. 

아집에서 벗어나면 나의 답만을 고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됩니다. 나의 답만이 정답이란 생각에서 자유로워지니 말입니다. 나와 완전히 다른 것에 동의하고 함께 하지 않아도 그의 존재 자체를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함부로 하는 순간 나는 그에게 악이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서로의 차이로 서로에게 벽을 만들지 않고 서로 다른 여럿이 서로 다른 채로 서로가 서로에게 응원할 수 있는 벗이 되기 위해선 아집에서 벗어나야 할 듯합니다. 나만의 있음, 나 홀로 있음만을 고집하지 않아야 할 듯합니다. 더불어 있음이란 서로 다른 답들이 어우러져 있음입니다. 더불어 있음이란 서로 다른 답이 하나로 있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답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어우러져 있음입니다. 서로 다른 답으로 하나의 아픔에 대하여 고민하고 때론 연대하며 서로 다른 생각과 방식으로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하나의 생각으로 통일될 필요는 없겠지요. 나의 우주는 나의 의식의 산물이며 그 우주가 그리 귀하다면 나 아닌 이의 우주 역시 나에게 귀히 대접받아야 합니다. 그때 나의 우주도 온전히 그에게 귀한 것이니 말입니다.

아집에서 벗어날 때 나의 우주도 온전히 귀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종국엔 그 우주에서조차 자유로워져지며 열반에 이르게 되겠지요.  

부처님 오신 날... 유식 사상에 대하여 저의 마음으로 돌아보았습니다. 

2021 05 09

유대칠 씀

 

운문사에서 아들 어린 시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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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전하는 더불어 삶의 행복

홀로 외로운 시대, 홀로 더 많은 것을 누리며 불행한 시대, 정말 제대로 행복한 것을 무엇인가를 예수의 <주님의 기도>와 행복과 불행에 대한 이야기를 묵상한 묵상 모임집이다. 더불어 있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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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 <우리와 더불어 우는 철학과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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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더불어 우는 철학과 신학

모두가 홀로 누리며 홀로 높아지려는 시대, 그 아집으로 인하여 수많은 이들이 아프고 힘든 시대, 참된 더불어 행복하게 위한 더불어 있음의 철학과 더불어 있음의 신학을 궁리해 본다. 우리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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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철학사 - 교보문고

이 책은 이 땅에서 우리말 우리글로 역사의 주체인 우리가 우리 삶과 고난에 대해 고민하고 사유한 결과물이 한국철학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중국의 변방에서 중국을 그리워하며 한자로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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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모독자 - 교보문고

중세에서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지성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험한 철학자 13인이 일으킨 파문과 모독의 일대기를 다룬 『신성한 모독자』. 중세에서 이단이란 그리스도교 외부에 있는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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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의 <일반 형이상학 입문>

 

일반 형이상학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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