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시절 나는 왜 그런지 두통이 참 심했다. 때론 참아내기 힘들 만큼 아팠다. 그러면 양호실을 찾았다. 그러면 할머니 양호선생님을 약을 주시곤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선생님은 나를 보면 내 두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셨다. 교회를 다닌다니 그날부터 그랬다. 내 이름과 내 부모님에 대해 나와 대화하고 날 위해 기도해준 유일한 국민학교 시절 선생님은 양호선생님이시다. 내가 졸업하면서 그분도 정년을 하신 것으로 기억하니 어쩌면 지금 하늘나라에 있으실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나를 무시하는 이들을 참 많이 봐왔다. 지금도 내 주변 대부분은 날 무지 많이 무시한다. 그런데 돌아보면 내 눈물만큼이나 많은 기쁨이 또 나를 찾아왔다. 힘든 시절 나를 도와준 이들의 고마움도 그렇고 말이다. 정말 되돌려드릴 능력 없는 나에게 기꺼이 내민 손들을 생각하면 더욱 더 그렇다.
가진 것 없어 투자니 하는 것은 생각도 해보지 못했고 추천을 받지도 못했다. 그러니 사기를 당할 일도 없었다. 나를 조롱해도 이젠 그냥 너는 그래라 나는 내길 간다는 식으로 산다. 조롱과 불신을 조롱과 불신으로 다툴 생각은 없다. 악을 죽이려는 악도 악은 악이고, 원래 세상은 그런 다툼의 곳이란 자기합리화 속에 숨고 싶지도 않다. 불합리한 곳을 피해 내가 아는 합리가 답인 곳을 만들겠다는 것도 어찌 보면 독재적이다. 내 답이 정말 답인지 누가 아는가 말이다. 불합리 속에서 내 작은 힘으로 큰 혁명이루지 못해도 그냥 내가 생각하는 내 길 가는 것, 그것이 내 삶으로 다가온 하느님의 계시라 믿는다. 하느님이 내려주신 그 빛 속에서 내 아집과 남의 티를 볼 것이 아니라 아픈 눈물을 봐야한다. 하느님이 내려주신 그 빛 속에서 내가 볼 첫 모습은 나와 아무 상관없지만 불조리함 속에서 아파하는 이의 눈물이다. 내가 살아봐서 안다. 세상은 싸워 이겨야하는 곳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들은 나는 변하지않는다. 나는 싸울 것이고 이길 것이다. 내 앞에 나를 가로 막지 말라는 것일 뿐이다. 나는 바보 같아도 싸워 이기는 삶보다 조금 더 아프게 우는 삶이라도 다르게 살아야겠다.
국민학교 시절 그 할머니 양호선생님이 대칠아 불러주시고 기도해주시고 요즘 그 모습이 다시금 떠오른다.
언젠가 하느님께서 대칠아 너는 지금 어디 누구랑 있느냐 물으실때 아파 우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당신을 이리 만나고 있습니다. 답할 수 있길... 그리 살아야겠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씀
금호강가에서 만난 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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