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강학회

하느님은 그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의 마음을 듣는 분이십니다.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19. 11. 24.

하느님은 그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의 마음을 듣는 분이십니다(Deus non uocis sed cordis audior est).

 

치쁘리아누스는 크고 요란한 기도 보다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으로 하는 기도를 강조합니다. 형제자매가 하나되어 하는 기도, 누군가 더 나서는 기도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가 서로의 아픔을 안아주면서 하나 되어 올리는 기도, 그런 기도를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혹시나 누군가 자신의 과도한 욕심으로 큰 소리를 내며 기도하는 이들을 두고 "하느님은 그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의 마음을 듣는 분이십니다"라고 합니다. 참 바른 가르침입니다. 

신앙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이 봉사했으니 내가 남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서 당연히 높임을 받으면서 신앙을 해야 한다는 그 마음은 우리를 부숩니다. 우리는 누군가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서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더 낮은 자리에 서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나의 자리에서 우리를 위하여 조용히 보이지 않게 하지만 쉼 없이 올리는 기도, 삶 속에서 쉼 없이 이어지는 기도, 그런 기도가 참된 기도일 것입니다. 매주 이런 저런 신앙을 위한 모임이라지만 모여서 남의 험담을 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한다면 그것이 어디 신앙의 자리일까요? 하느님의 덕으로 돈을 더 벌었다는 이야기를 한다면 그곳이 신앙의 자리일까요? 겨우 하느님을 돈을 더 벌게 해주는 신 정도로 만들어 버리는 신성모독의 자리이고, 돈을 더 벌었다고 남들에게 자랑하며 더 높임을 받으려는 교만의 자리겠지요. 

더 큰소리를 기도하는 자, 남들에게 분심을 들게 하면서 하느님 나의 소리만 들어주세요. 내가 더 큰 일을 하고 더 많은 일을 했으니 나의 소리를 좀 더 들어주세야 기도하는자! 치쁘리아누스는 이런 이들을 부끄러움도 모르는 자라고 합니다. 하느님은 너의 하느님과 나의 하느님이 아닌 우리의 하느님, 우리의 아버지이신데, 왜 나만을 그리고 소리 높여 외치는가라고 말입니다. 나만 외치는 그 소리를 결국 우리의 밖으로 나만을 강조하며 우리의 밖으로 나아가는 소리일 뿐입니다. 결국 아집입니다. 하나의 작은 성당, 결국 단체장들 모두를 제외하면 사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소리 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나름의 신앙을 이어가고 있는 분들입니다. 회장도 아니고, 총무도 아니고, 이런 저런 직함도 없이 일상 속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저는 이분들이 정말 소중하다 생각됩니다. 어쩌면 바로 이런 분들이 그 오랜 그리스도교 역사를 이어온 하느님의 참 자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해기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은 분들도 바로 이런 분들이겠지요. 그러나 그분들이 하느님의 품에서 그것을 섭섭하다 생각할까요? 아닐 것입니다. 그분들은 이름을 남기지 못하셨지만, 더 큰 것을 남기셨으니까요.

큰 기도 소리로 자신만 드러나고자 하는 이들, 자신의 이름이 기억되기를 바라는 이들, 더 높은 자리에 당연히 올라가야 한다 생각하는 이들, 그리고 그들의 옆에서 무엇이라도 얻어 먹고자 하는 이들, 이 모든 것들은 교회의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을 배우고 익히고 궁리하고 고민하며 이 세상 이런 저런 유혹 속에서 하나되어 살아가는 우리가 부서지지 않게 노력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공간, 바로 그곳이 교회가 아닐가요? 자신이 무슨 무슨 봉사와 기부로 교회에 이런 저런 기여를 했다고, 그것을 자랑하며 스스로 높임 받기를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다니는 이들의 그 큰 소리보다 하느님은 여전히 아집 속에 살아가는 그 마음을 보고 있으십니다. 비록 대단한 크기에 대단한 무엇인가로 꾸며지지 않았지만, 낮은 교회에 기뻐하시고 높은 교회에 슬퍼하시는 하느님이심을 저는 믿습니다. 

조용히 삶으로 기도하는 모습, 높은 자리에 있지 않아도 일상의 공간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드러나지 않지만 항상 궁리하고 궁리하는 모습, 그 모습, 그 신앙의 모습, 하느님은 그 마음을 보시는 것이지 큰 소리, 나서는 소리, 대단한 몸짓을 보시는 것은 아니란 생각, 요즘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전하는 듯 합니다. 동학농민혁명, 그 혁명의 몸짓으로 죽어간 많은 이들의 외침과 희생, 그들이 당시는 일본군과 타락한 조선의 지도자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는 실패한 역사인 듯 보였지만, 결국 그들은 뜻 있는 역사를 만들어갔습니다. 비록 그들의 이름을 우린 기억하지도 못하지만,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서 뜻을 일구어간 그 외침들이 뜻 있는 역사를 만들어 갔습니다. 하느님은 어쩌면 당시 높은 자리에서 떵떵 거리는 이들의 그 큰 소리가 아니라, 뜻을 위하여 자기 헌신하는 이들의 그 뜻의 소리를 들으시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다시금, 하느님이 보시는 것은 소리가 아닌 마음이란 것, 여러 생각을 해 봅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씀

2019년 11월 24일 주일 새벽

전주 동학농민운동기념관에서 찍은 사진... 보이지 않고 기억되지 않는 작은 기도들이 역사를 만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