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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강학회

성찰 2019.11.30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19. 11. 30.
성찰 2 2019.11.30

성탄의 기쁨이 우리 가운데 더불어 행복한 희망의 기쁨이라기 보다는 자본주의 사회가 권하는 소비의 기쁨이 된지 제법 오래다. 아니 제대로 아름다운 성탄을 기억하고 산 적은 있는지 모르겠다.
예수는 스스로 이땅에 와 스스로 기꺼이 고난 속에 힘들게 살다 아픔 속에 돌아갔다. 스스로 그러했다. 사랑하니 말이다. 사랑은 스스로 충분히 달리 살수있지만 정말 사랑해서 어쩔수없이 누군가의 아픔으로 다가가는 일종의 자기 포기다. 기꺼이 아파하고 기꺼이 품는다. 기꺼이 나만 생각하지 않는다. 너로 인해 아픈 내가 너 없이 있는 나보다 더 마땅이 있어야할 나라며 그리 아프게 사는 것이 사랑이라며 기꺼이 그리 산다.
성탄은 그 아픈 사랑이 우리에게 눈에 보이게 다가온 사건을 기억함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그 아픈 사랑으로 우리네 삶도 그와 같이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시간이어야한다. 그리 다짐하고 그리 살아야한다. 너보다 더 가지는 욕심, 그 홀로 외로운 소유의 기쁨보다 너와 더불어 기쁜 공유의 기쁨을 다짐하는 것이 성탄의 뜻을 돌아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쉽지않다. 홀로 더 가지려는 그 외로운 기쁨, 그 슬픈 기쁨, 거짓 기쁨을 뒤로하고 더불어 함께 기쁜 참된 희망으로 살자면 우리에게 다가온 예수에게 우리에게 방이 없다 물리친 것이 바로 우리다. 나만 생각하면 너도 우리도 보이지않는다. 나만 보인다. 더불어는 듣기 좋은 말이지 삶이 되지못한다.
더 가지려는 외로운 자본주의의 기쁨이 웃는 거짓 성탄에서 우린 이제 더불어 웃는 성탄을 향해야한다.
그래야한다. 진정...
유대칠 암브로시오 씀

갈매못 순교성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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