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 102호실30 하느님의 나라 3: 진짜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또한 당신의 눈이 당신을 걸려넘어지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내던지시오.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는 애꾸눈으로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편이 당신을 위해 낫습니다. (마르코 복음 9장 47절) 우린 자꾸 사실을 본다면서 자신의 이기심을 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저 앞의 차이고 아파트인데 그것을 보지 않고 얼마짜리 차와 몇 평의 얼마짜리 아파트를 봅니다. 결국은 돈을 봅니다. 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돈으로 세상을 나눕니다. 그리고 돈으로 누군가를 무시하고 돈으로 무시받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기도 합니다. 결국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돈이며, 돈이 꼭 신이 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런 마음으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하느님의 나라는 그러한 곳이 아닙니다. .. 2020. 12. 30. 하느님의 나라 2. 여기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사세요. 지금. 그러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게 해 주셨지만, 저 바깥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수수께끼 같은) 비유로 들립니다. (마르코 4장 11절) 그럴 것입니다. 요즘 모두가 자본의 이야기로 대화를 채웁니다. 한마디로 돈 이야기가 전부인 경우가 많습니다. 친구가 의사이면 "돈을 잘 벌겠네"이고 친구 자녀가 공부 잘하면 "돈을 잘 벌게 되겠네"이고 친구가 비싼 집에 가면 "돈이 많네" 혹은 "앞으로 돈 벌겠다"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돈입니다. 공부를 해도 돈입니다. 어떤 직장을 가져도 돈입니다. 삶이 그냥 돈뿐입니다. 잘 사는 것이 돈으로만 이루어진다 믿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과거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이렇게 잘 살게 되었는데 불행하다는 생각은 더욱더 커지고 있습니다.. 2020. 12. 29.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더불어 철학 2020 12 21) 중세 철학자들은 신을 알 수 없다 했습니다. 신을 안다는 것은 신을 사람의 이 작은 두뇌 속에 집어 놓는다는 말이 되니 말입니다. 신이 이 작은 두뇌 속에 들어온 정도로 작은 존재가 아니 사람은 절대 신을 알 수 없다 했습니다. 알 수 없는 신을 향한 여정이 신앙이고 그것을 합리적으로 체계화한 것을 신학이라 생각했습니다.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사랑이 신앙이란 말이 됩니다.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하여 사랑할 수 있을까요? 알지도 못하는 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알까요? 사실 그렇게 생각하면 신앙이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쉼 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고민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착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실 하느님은 착하게 사는 것을 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착하게 산다.. 2020. 12. 20. 돈은 종교를 독약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2020 12 18)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모두 양과 소와 함께 성전에서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며 그 상들을 둘러엎으셨다. (요한 2장 15절) 성전 세는 모두가 유다돈으로 바쳐야 했습니다. 당시 강대국이며 현실적으로 지중해 유일의 강대국인 로마의 돈으로 바칠 순 없었습니다. 그러나 환전소, 즉 돈을 바꾸어주는 곳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는 그것의 돋을 쏟아 버리셨을까요. 돈, 그것은 항상 이익을 남기려는 이들을 부르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을 보면서 돈을 떠올리게 됩니다. 사람들이 더 많이 오면 사람이 더 많이 오는 것으로 보이지 않고 더 많은 돈이 오는 것으로 보입니다. 눈으로 감각하는 것은 같지만 영혼의 판단은 다릅니다. 영혼은 보고자 하는 것을 봅니다. 감각은 보이는 대로 보지만 영혼은 보려는 모.. 2020. 12. 18. 이전 1 2 3 4 5 ···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