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신학199 더불어 있음의 존재론 1. 참으로 무엇으로 있는 것에 대하여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것의 가장 근원적인 바탕이 되는 것을 헬라 사람들은 우시아(Ousia)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을 흔히 일본과 한국에선 '실체'라고 번역합니다. 실체는 다르게 되지 않으며 다른 것에 그 존재를 의존하지 않는 그러한 존재입니다. 라틴어로는 숩스탄씨아(substantia)라고 합니다. 이것은 라틴어로 악치덴스(accidens)라고 불리는 것과 다릅니다. 악치덴스는 흔히 우연히 있다는 의미에서 '우유'라고 번역합니다. 유대칠의 머리 모양이나 유대칠이 사는 곳 그리고 유대칠의 소유하는 것 등은 유대칠의 본질을 다르게 하지 못합니다. 유대칠은 대구에 사는 사람이지만 대구에 사는 사람이란 장소에 대한 서술이 유대칠의 본질은 아입니다. 유대칠은 이 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 2020. 11. 8. 행복하여라 3 - 과연 어느 것이 행복한 삶일까? 복되어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상속받으리니. (마태오복음 5장 5절) 어린 시절부터 이 말이 참 힘들었습니다. 부드럽고 온화한 이들은 종종 바보 대접을 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어른들의 말처럼 온화해서는 안 되고 독해야 이 세상을 살아남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다시 가만히 생각하면 결국 목소리 큰 놈의 시대는 잠시입니다. 그들끼리 서로 목소리 크게 싸우다 지워져 가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과거, 민중은 자신의 생명마저 지배자의 손에 맡기고 살았습니다. 죽으라면 죽었습니다. 산 채로 지배자의 무덤에 묻어 버리기도 했지만 분노하지 못했습니다. 태어나면서 노비인 사람은 자기 삶에 대한 어떤 노력에 대한 평가도 없이 그냥 노비라만 살았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노비이고.. 2020. 11. 7. 행복하여라 2 위로가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복되어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으리니. (마태오 5장 4절) 벗어나기 힘든 무력감에 홀로 슬플 때가 있습니다. 이런저런 사회적 부조리에 무력하게 당하는 자신의 모습에 홀로 슬프기도 합니다. 아무도 자신의 손을 잡고 그 억울함에 더불어 함께 분노하지 않는 그 홀로 됨에 좌절의 슬픔을 느끼기도 합니다. 물론 이별과 같은 매우 개인적인 사정으로 홀로 슬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적 사연의 슬픔도 더불어 옆에서 울어주는 이가 없다면 그 슬픔은 더욱더 깊어집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이 모든 슬픔은 슬프고 싶어 슬픈 것이 아닙니다. 슬퍼지게 된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스스로 손들고 나가서 슬픈 것이 아니라, 슬프고 싶지 않지만 그렇게 된 것입니다. 당한 것입니다. 사회적 부조리는 그것으로 누군가는.. 2020. 11. 6. 행복하여라! 1 아집에서 자유로운 이여! 하늘나라의 백성이여! 복되어라,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Μακάριοι οἱ πτωχοὶ τῷ πνεύματι, ὅτι αὐτῶν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마태오복음 5장 3절 주님께서는 마음이 부서인 이들과 더불어 있으시고 넋이 밟힌 이들을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35,19) 주님께서는 아집으로 단단한 이들과 더불어 있지 못하십니다. 그들의 곁에서 머물러도 그 단단한 벽이 주님 자리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으로 가난한 이는 빈자리가 많습니다. 아집으로 채워지지 않은 그 빈자리에 하느님과 이웃들이 머물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오직 돈돈돈 그리고 권력 권력 권력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해도 항상 돈이 되는 일이나 권력에 도움이 되는.. 2020. 11. 5. 이전 1 ··· 27 28 29 30 31 32 33 ··· 5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