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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신학199

희망의 기도 희망은 멈춘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믿습니다. 희망은 생명이며 살아 나아가는 순간순간 내안에 더 크게 이루어지는 우리 하느님의 나라라 믿습니다. 하느님, 하느님의 뜻으로 나를 부수어 당신의 뜻과 같게 하소서. 저는 그것 하나 부여잡고 이 길 가려합니다. 보이지도 드러나지도 않을 길이라 더 편한 마음으로 이 길 갑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2019. 12. 19.
하느님의 나라는 울보의 나라일지 모릅니다. "교황은 전쟁이 '타인의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는 곧 “이기심, 자만, 증오, 그리고 타인을 파괴, 배제, 희화화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권력 강화 및 지배 욕구를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53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중 https://www.vaticannews.va/)나와 다른 타자, 그 타자를 그저 자신의 경제적 이득 속에서만 본다면, 그저 자신의 수단에 그칠 뿐입니다.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닌 그저 수단말입니다. 타자를 그저 수단으로 삼는 사람에게 온전한 신앙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신앙까지 가지 않아도 됩니다. 당장 우리가 만나고자 하는 온전한 사람다움이란 것이 그들에게 있을까요?그를 있는 그대로 그로 마주한다면, 그는 나의 .. 2019. 12. 16.
기도하는 이는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기도하는 사람은 말이나 청원함에 있어 절제하고 조용하고 ‘부끄러움(pudorem)’이 있어야 합니다. 치쁘리아누스의 에 나오는 말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말이나 청원함에 있어 절제있고 조용하고 부끄러움을 알아야 합니다. 참 좋은 말입니다. 기도하는 사람, 조금 의미를 좁혀서 신앙이란 것을 가진 이들은 부끄러움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하느님'에게 기도한다지만, '우리'라는 말이 참 어색하게 이기적 기도를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나의 행복과 나의 소유와 나의 권력과 나의 높음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심지어 조금 높은 자리에 오르고 조금 더 많이 가지고 조금 더 많은 권력을 가지면 그것을 가지고 '나'를 도운 하느님이라며 자랑을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부유함은 누군가의 아픔을 조건으로 가능한 세상입니다.. 2019. 1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