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재강학당14

나만 아프다... "다만 그의 몸은 자기의 아픔만을 느끼고 그의 영은 자신만을 애통해합니다." 욥기14장22절 그 많은 고마움은 보이지않고 그저 나만 아프다 생각한다. 그 아픔에만 집중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 앞에 당장 누구 찾아와 죽음의 고통을 당하지만 보이지않는다. 결국 나도 그도 모두 홀로 외로운 신앙을 이어간다. 경우에따라서 이기적인 신앙이 되기도 한다. 우리로 함께 있지 못하고 흩어져 버리기도 한다. 각자 각자 그렇게 저마다 자기 아픔에서 한걸음도 나서지 못한다. 눈을 떠 내 앞 아픔에 다가가자. 다른 이유없다. 그냥 더불어 안아주자. 그가 홀로 아프지 않게 우리됨을 보여주자. 그때, 나도 이 홀로된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곳에 하느님 역시 더불어 있으시리라 믿는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 2019. 12. 9.
비워진 이들에게 채워주세요. 그러면 비워진 당신의 그 자리를 채워주십니다. “‘복되어라!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받으리니(마태오 5,7)’라는 이 말씀을 보십시오. 자비를 우선 베푸셔야 합니다. 그러면 자비를 받게 됩니다. 자비를 받고 싶으면 다른 이에게 자비를 먼저 베풀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넘치게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 하여도 여전히 모자란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을 그리도 많이 넘치게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아직 영원한 생명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거지가 구걸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하느님 앞에서 거지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구걸하는 동안 여러분도 구걸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그 비어 있는 곳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가득 차 있는 여러분이 어려움에 처한 비워진 이들을 채워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그 빈곳도 하느님의.. 2019. 12. 3.
성찰 2019.11.30 성찰 2 2019.11.30 성탄의 기쁨이 우리 가운데 더불어 행복한 희망의 기쁨이라기 보다는 자본주의 사회가 권하는 소비의 기쁨이 된지 제법 오래다. 아니 제대로 아름다운 성탄을 기억하고 산 적은 있는지 모르겠다. 예수는 스스로 이땅에 와 스스로 기꺼이 고난 속에 힘들게 살다 아픔 속에 돌아갔다. 스스로 그러했다. 사랑하니 말이다. 사랑은 스스로 충분히 달리 살수있지만 정말 사랑해서 어쩔수없이 누군가의 아픔으로 다가가는 일종의 자기 포기다. 기꺼이 아파하고 기꺼이 품는다. 기꺼이 나만 생각하지 않는다. 너로 인해 아픈 내가 너 없이 있는 나보다 더 마땅이 있어야할 나라며 그리 아프게 사는 것이 사랑이라며 기꺼이 그리 산다. 성탄은 그 아픈 사랑이 우리에게 눈에 보이게 다가온 사건을 기억함에서 시작한다... 2019. 11. 30.
성찰 2019.11.29 (Meditationes de ente in nobis) 우리 가운데 있음에 대한 성찰 Mditationesde ente in nobis 2019년 11월 29일 성찰 사람들을 떠나 아무도 없는 산 높은 곳에서 초월적인 하느님의 지혜를 구하던 이들 가운데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신의 죽음, 어찌 보면 신의 잔인한 절대적 침묵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게 초월적인 하느님의 지혜라면, 우리 밖 우리에게 남으로 있는 하느님의 지혜라면 과연 우리 삶의 참다운 지혜가 될까요? 하느님의 지혜는 우리 밖이 아닌 우리 안에 내적 초월성으로 나와 너를 우리라는 하나의 있음으로 묶어주는 신앙의 핏줄과 같은 것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밖에 가서 하느님의 지혜를 구한다면, 어쩌면 그 우리 밖 하느님의 지혜는 참다운 하느님의 지혜가 아닌 허상일지 모릅니다. 우리의 아픔을 모르는 지혜.. 2019. 1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