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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강학회19

고난 속 신앙 "저는 오늘 아침 이곳에 오기 전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우크라이나의 한 교구에서 온 순례자들과 만났습니다. 저는 이들이 어떻게 박해를 받았는지 들었습니다. 그들은 복음 때문에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신앙을 타협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들은 하나의 사례일 뿐입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유럽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고 있으며, 자신들의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무관심 속에서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 순교는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삶의 공기입니다. 순교자들은 항상 우리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님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표징입니다. 하느님 백성 가운데 누군가 순교의 증거를 주는 것은 주님의 축복입니다." 순교는 멀고 먼 이야기.. 2019. 12. 16.
나쁜 신앙... "우리 현대인들은 이웃 형제자매들에 대한 책임감을 상실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서 언급하신 사제와 레위인의 위선에 빠져버렸습니다. 길가에 쓰러져 죽어가는 형제를 보면 아마도 이렇게 얘기할 겁니다. "가련한 영혼이여!" 그리곤 그냥 가던 길을 가버리는 겁니다. 안락을 추구하는 문화는 오직 우리 자신만 생각하도록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웃의 고통에 무감각하게 만들고, 사랑스럽지만 허상 가득한 비누거품 속에 살도록 합니다. 그것들은 이웃에게 무관심하게 만드는 덧없고 공허한 망상에 빠져들게 합니다. 참으로 ‘무관심의 세계화’로 이끄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화 된 세상에서 세계화된 무관심으로 타락했습니다. 우리는 이웃의 고통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나한테는 영향 없어, 나하고 무슨 상.. 2019. 12. 15.
너의 아픔과 더불어 나아가는 신앙... “어느 누구도 종교를 개인의 내밀한 영역으로 가두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요구할 수 없습니다. 종교는 국가 사회생활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말라고, 국가 사회 제도의 안녕에 관심을 갖지 말라고,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에 대하여 의견을 표명하지 말라고, 그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요구할 수 없습니다. … 참다운 신앙은 결코 안락하거나 완전히 개인적일 수 없는 것으로서, 언제나 세상을 바꾸고 가치를 전달하며 이 지구를 이전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곳으로 물려주려는 간절한 열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 모든 그리스도인은, 또 사목자들은 더 나은 세계의 건설에 진력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복음의 기쁨, 183항) 나를 그저 홀로 있는 나로 마주하는 신앙은 우리 가운데 타자의 아픔에 무감각해지고 그 아.. 2019. 12. 14.
혼이 녹아든 기도와 같은 삶... 우리는 하나되어 주님에게 나아갈 것이다. 말로 하는 기도는 참으로 흔하고 흔하다. 많이들 한다. 여기 저기에서 참 많이 한다. 주님의 기도는 가톨릭교회에서도 많은 개신교회에서도 동방정교회와 성공회에서도 하느님을 향하여 올려진다. 말로는 참으로 흔하게 하는 기도다. 그런데 과연 우리의 삶은 그렇게 살고 있을까? 그 기도가 말에서 그치지 않고 혼에 녹아든 기도라면, 그 기도의 내용은 삶이 되어야 한다. 치쁘리아누스는 우리 주님이 가르쳐주신 그 기도는 우리 신앙의 토대이고 기둥들이고 영양분들이라고 했다. 그리스도교 신자로 우리의 삶이 오롯이 살아지는 따스한 집이 우리의 신앙이라면, 그 신앙이라는 집이 세워질 흔들리지 않는 토대, 그리고 단단하게 올려져 비바람을 막아줄 지붕과 벽이 기댈 단단한 기둥들이 필요하다. 또 이런 저런 이기적인 욕심으로 부터 .. 2019. 1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