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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캄연구소394

철학의 대전환... 아리스토텔레스, 그들은 달랐다. 서유럽의 중세철학은 ‘그리스도교 철학’을 조건으로 이루어진 ‘철학’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철학’이라 부르는 것은 기본적으로 ‘헬라스 철학’을 기본으로 한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더 엄밀하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다. 서유럽은 라틴어로 번역된 문헌에 한하여 철학이 이루어졌다. 라틴어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라틴어로 번역된 것이 그렇게 풍부하지 않았다. 라틴어로 되어 있는 것만이 헬라스 철학으로 중세 서유럽의 학자들을 이어 줄 수 있었다.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초반 ‘칼키디우스’가 라틴어로 번역한 플라톤 『티마이오스』와 5세기에서 6세기 ‘보에티우스’가 번역한 조금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 정도 그리고 4세기 ‘마리우스 빅토리누스’가 번역한 플로티누스의 『엔네아데스.. 2020. 9. 25.
철학의 대전환... 나는 중세를 그리려 한다. 지중해 연안을 돌아본다는 것은 지금 여기 나의 철학적 작업에 매우 소중한 무엇이 되기 위해서다. 단순한 남의 과거가 궁금해서가 아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지중해 연안의 많은 철학적 결실 속에서 철학을 진행하고 있고 또한 살아가고 있다. 예를 들어, 국제법의 존재론적 근거가 바로 그곳에서 그곳의 철학자들에 의하여 만들어졌으며, 이후 온 세상에 퍼진 것이다. 그 이외 그곳에서 다져진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그리고 유대교 역시 지금 여기 나에겐 그저 남의 일이 아니다. 수많은 이들이 교회와 성당을 다니고 있고, 지금 뉴스에는 어렵지 않게 이슬람과 유대의 충돌을 보고 있다. 그 충돌이 그저 남의 일인가? 당장 석유값이 오를지 모르고 우리의 청년들이 파병을 해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여러 논의들이 오가기 시작할지 모.. 2020. 9. 20.
삶으로의 신비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하고 집중하면 도달하는 것이 신이라면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일상 속 나는 일상에서 벗어나 신을 찾아야 한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하고 집중하며 일상을 벗어나는 신비가 아닌 이 땅에서 호흡하는 내 삶의 신비를 생각한다. 쉼 없이 나의 밖을 향하여 나의 아집에서 벗어나고 벗어나며 너에게로 다가가는 것 말이다. 아무리 다가가도 나는 나의 속에 있을 뿐이고 너는 너의 가운데 있겠지만 그 불가능함을 향하여 나는 너를 향하여 너는 나를 향하여 우리가 되기 위하여 더불어 만나는 그 일상 속 더불어 있음에서 나는 신비를 말하려 한다. 신비는 직관이나 관조가 아닌 삶이 되어야 할 듯 하다. 지금 여기 나의 삶이 신비이며, 나의 삶이 신을 향한 걸음이며, 나의 삶이 신의 드러남.. 2020. 9. 7.
철학은 알고 있을까? "철학이 깊어지기 위해서는 그 철학의 공간과 시간을 채우는 아픔과 슬픔을 알아야 한다. 그 아픔과 슬픔을 품어야 한다." 대한민국철학사 중 491쪽 철학의 언어가 어려워도 그 언어가 우리 삶의 아픔을 담고 있다면 우리는 읽는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우리가 당하는 이 모든 부조리에 분노하고 있으며 우리의 처지에 공감하고 있다면, 같이 울고 있다면 우린 읽는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철학은 그런 아픔을 알고 있을까? 지금 이 땅 이곳의 아픔과 슬픔을 품고 있을까? 조금 답답한 현실이다. 어쩌면 철학의 언어가 어려운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지 모른다. 그저 교양으로 알기에 남의 아픔 남의 치료제를 굳이 힘들게 이해하려니 힘들고 어려운 것이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이렇게 아픈데 저곳에서 나의 아프을 모르는 .. 2020. 9.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