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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463

유대칠의 신학, 신학은 삶의 방식이다. 삶이 되어야 한다. 서양의 중세와 근대, 그렇게 신에 관하여 다양한 고민을 하고 논증을 하고 풀이를 했다. 중세만 그런 게 아니다. 근대 역시 마찬가지다. 그 방식이 중세와 다를 뿐 결국 철학 논쟁은 대부분 신을 향했다. 그 신이 어떤 식이든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이론으로 논증된 신학의 신, 또 철학의 신은 결국 사람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우리 삶에 다가오지 못했다. 오히려 신을 제외하고 진행된 학문은 빠르게 흘러갔다. 19세기 이후 그리고 20세기 이후 학문의 진보, 그 빠르기는 대단하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신을 향하여 논쟁하지 않는다. 신이 철학에서 그리고 물리학과 생물학에서 빠져 버렸고 이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나의 신학이 이루려는 건 신을 논증하거나 신을 이론 속에서 파악해 다가가려는 게 아니다.. 2023. 11. 12.
우리는 조화 속에 있어야 한다. (요한복음 1장 1절) 우리는 조화 속에 있어야 한다. (요한복음 1장 1절) “처음에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있었고, 하느님은 말씀이었다.” “᾿Εν ἀρχῇ ἦν ὁ Λόγος, καὶ ὁ Λόγος ἦν πρὸς τὸν Θεόν, καὶ Θεὸς ἦν ὁ Λόγος.” (앤 아르케 엔 오 로고스 까이 오 로고스 엔 쁘로스 똔 태온 까이 태오스 엔 오 로고스) “In principio erat Verbum et Verbum erat apud Deum et Deus erat Verbum.” (인 프린치피오 에랏 베르붐 엣 베르붐 에랏 아푸드 데움 엣 데우스 에랏 베르붐.) 이 세상은 오직 하느님뿐이었다. 그만이 홀로 있었다. 그의 생각, 즉 그의 말씀이 곧 그와 함께 있는 그 자신.. 2023. 6. 25.
사랑은 우리 편을 만드는 게 아닙니다. (더불어 있음의 신학) "처음부터 들은 말씀이 바로 이겁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요한의 첫째 편지 3장 11절 사랑이란 우리 편 만들기가 아닙니다. 사랑이란 이기심의 발현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기심으로 뭉치면 우리 편이 될 뿐, 제대로 우리가 되지 못합니다. 제대로 우리는 남과 싸우기 위한 것도 아니고, 같은 생각과 같은 종교 그리고 같은 배경의 사람으로 모인 게 아닙니다. 제대로 우리는 사랑으로 하나 된 이들도, 사랑은 서로 다른 이들이 서로 다름을 그대로 두고 서로의 아픔을 품어 주는 겁니다. 그리스도교인 그에게 이슬람 교도 역시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의 아픔을 남의 아픔이라 밀어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랑한다면, 말이다. 같음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피부색이 다르다 해도, 철학이 다르다 해도, 밀어내지.. 2023. 6. 10.
자기 삶으로 치열한 여럿... 나는 영웅적으로 살아가는 어떤 이와 그 영웅적 여정을 따르는 이들의 공간보다... 실수도 많고 서로 다투기도 하고 다시 뭉치기도 하면서 자기들 각자의 인생을 위해 치열하면 그 치열함이 서로 모이고 모여 그 공동체의 역사를 채워가면 좋겠다. 착한 영웅이든 나쁜 영웅이든 영웅이 있는 곳보다... 그냥 자기 삶으로 치열한 여럿이 있는 곳... 그런 곳이 좋다. 결국 그 가운데 제대로 된 우리의 더불어 있음도 가능할 것이기에 말이다. 그냥 그런 생각을 한다. 2023년 6월 9일 유대칠 [대구에서 독서와 철학 공부를 함께 하고 싶다면 0i0-44i4-o262로 문의 문자 바란다. 대구 성서 계대 인근 금호강가에 작은 철학 공간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으니] 2023. 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