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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유대칠70

불쌍한 우리 (일간유대칠 2020.04.08) 우린 참 불쌍하다. 수년 전의 일이다. 친구가 사고로 죽었다. 두 명의 여동생과 한 명의 남동생을 가진 친구는 실질적인 가장이었다. 작은 식당을 하는 친구의 어머니는 학자가 되고 싶던 친구는 직업 학원에 보냈다. 말은 스스로의 선택이라지만, 1998년 IMF의 상황에서 이미 오래 전 부터 다른 여인과 사는 아버지와 이미 오래 전 부터 아들만 유일한 희망으로 여기는 어머니 사이에서 친구는 대학이 아닌 직장을 선택했다. 분명 또 다른 의미에서의 강제성에서 말이다. 친구는 성실했다. 직장을 다니며 방송대를 다녔다. 사라진 아버지의 자리를 어머니는 남동생에게서 찾으려 할 것일지 모르겠다. 조금은 사태한 삶을 사는 남동생을 위해 어머니는 희생을 했고, 그 희생의 크기가 클 수록 친구의 희생도 동시에 커졌다. 그것.. 2020. 4. 8.
사람이다. 사람! 나만큼 온전한 사람이다. (일간유대칠 16호 2020.02.09) 나는 동성애자, 양성애자 등등 많이 봐왔고 다들 나의 친구였다. 그냥 사람이다. 이상한 사람도 아니고 그냥 사람이다. 윗사람 있고 아랫 사람 있던 조선이란 신분제 사회의 나라에선 사람을 위하지 못했다. 그럴 힘이 약했다. 그래서 그것이 조선의 한계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모습으로 있고자 애쓰는 그 애씀을 보자. 사람이다. 그들은 이상한 사람으로 만든다고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는가... 아니다. 오히려 부끄러운 사람이 될지 모른다. 선심을 쓰는 것도 아니고 시혜를 베푸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있는 그대로 보면 그만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냥 그들은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다. 제발 서로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지 마라. 설령 그런 생각이 들어도 그들은 .. 2020. 2. 9.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1권 2장 한글로 옮기고 풀이 (일간유대칠 7호 2020.01.19) 아우구스티누스 1권 2장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오캄연구소) 올기고 풀이함 한글번역 1.2.2 그리고 나의 하느님, 하느님, 나의 주님을 어떻게 불러야 합니까? 내가 그를 부를 때, 이는 분명 그분을 나의 안에 오시라 청하는 까닭이 아닌지요? 그리고 내 안 어디에 나를 찾아오신 나의 하느님이 계실 것입니까?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느님, 그 하느님이 오실 자리가 내 안에 말입니까? 주님, 나의 하느님, 내 안에 당신을 받아드릴 것이 있단 말입니까? 진정 하늘과 땅을 창조하였고, 그 가운데 나를 창조하신 분, 당신을 어찌 하늘과 땅이 받아드린단 말입니까? 당신 없이 있을 것이 없기에 무엇이든 당신을 받아들여하는 것입니까? 내가 이렇듯 있는 데, 어찌 하여 나는 당신께 나에게 오시라 청하는 것인지요. 나는 .. 2020. 1. 19.
문익환의 발바닥 철학 (일간유대칠 6호 2020 01 18) 발바닥... 아래로는 험한 바닥을 위로는 무거운 몸의 무게를 지고 그 사이에서 힘들기만한다. 우리네 민중이 이와같다. 매번 그 시대의 모순 속에서 눈물을 일상으로 산다. 역사 속 고통의 주체이지만 역사의 주체도 철학의 주체도 되지못하고 그저 고난 속에서 아파했다. 이제 그들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철학해야한다. 철학의 대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논리 속 가난이 아닌 삶으로 힘겨운 그 가난이 철학의 주체이면 대상이 되어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아야한다. 발바닥 철학... 문익환의 발바닥 철학은 목사의 철학이 아니라 이 땅 모순 속 아파한 민중의 철학이다. 이제 내 몫의 생각은 내가 하고 내 몫은 삶은 스스로 지겠다는 것이다. 변두리가 아니 역사의 중심에서 말이다. 대학에서 철학은 무력한 글놀이 였다면 .. 2020. 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