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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유대칠70

사라져 버린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일간유대칠 2020.04.25) "나다운 '나'로 있을 수 있는 터가 '우리'라는 전체 안이다. 양심도 홀오 있는 나에게 생긴 것이 아니다. '우리'라는 전체 가운데 '너'와 더불어 있는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25쪽 어린 시절 내가 살던 곳은 지금은 그 흔적도 없다. 골목 하나도 살아남지 못하고 온전히 사라졌다. 재개발이라지만 원래 있던 곳이 더 좋아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곳이 생겼다. 그리고 그곳은 더 이상 내 어린 시절의 공간이 아니었다. 친구들이 오락을 하던 호돌이 오락실은 아예 사라졌다. 나는 오락실을 가지 못했다. 용돈이란 것이 없으니 오락실을 갈 수 없었다. 그냥 친구들이 그곳에 가는 시간,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운동회 날 나와 어머니가 함께 식사를 한 적은 단 한 번이다. 6학년이지 싶다. 그때 주변 .. 2020. 4. 25.
결핍의 사랑? (일간유대칠 2020.04.17) 고난은 우리의 삶을 죽음으로 이끌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싹을 향한 애씀이고 잎을 내기 위한 애씀이며 과실을 햔한 애씀이다. 이런 고난으로 우리의 인생은 외대해진다. ( 365쪽) 아픔의 주체가 행위의 주체가 될 때, 역사는 민주이란 주체로 움직이게 된다. 이런 저런 명상으로 현실을 도피하며 신선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난의 한 중앙에서 그 고난의 중심에 설때, 그 고난의 주체가 될때 고민의 주체가 되고 궁리의 주체가 된다. 우리는 이렇게 살라는 책이 많다. 구체적으로 이렇게 메모하고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투자하고 이렇게 암기하라는 다양한 명령들이 가득한 책 속에 산다. 스스로 궁리한 나의 답을 생각하기 보다 전쟁터에서 장군의 명령을 기다리는 병사와 같이 말이다. 그런데 그 책들이 읽어 .. 2020. 4. 17.
어두워서 희망입니다! (일간유대칠 2020.04.15) 너희 점쟁이의 자식들아! 간통하는 남자와 매춘부의 종자야 이리 오너라! (이사 57.3) 너희는 영매들과 점쟁이들에게 가지 마라. 너희가 그들을 찾아다녀 그들이 너희를 부정하게 만드는 일이 없게 하여라.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레위 19,31)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희 가운데에 있는 예언자들과 점쟁이들이 너희를 속이도록 내버려 두지 말고, 너희가 꾼 꿈을 풀이하려고 하지 마라. (예레 29,8)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임금님이 주님의 말씀을 배척하셨기에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왕위에서 배척하셨습니다. (1사무 15,23) 요즘 이상한 종교들이 점점 힘을 가집니다. 이상한 종교라고 제가 부르는 것은 '이기심의 종.. 2020. 4. 15.
나 역시 오답이다. (일간유대칠 2020.04.14) "너의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요한 8장 7절) 나 역시 오답이다. 그냥 나에게 정답으로 보이는 그 무엇을 고집하며 산다. 그 고집 밖에 대해선 때론 제법 잔인하다. 무지하다 욕하기도 하고, 미개하다 무시하기도 한다. 결국 나의 생각, 이 작은 틀 속에 들어와야 한다. 내가 아는 너만이! 내가 허락하는 너만이! 무지하지도 미개하지도 않다. 이런 생각에 아무런 악의 없이 누군가를 비난하고 조롱한다. 그저 자신의 작은 그 고집 속에 없다는 이유 그 하나만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런 비난으로 남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은 그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는 나름의 안심일지 모른다. 나는 비난하는 사람이지 비난 받는 사람은 아니라는 이상한 그 시간 동안의 안심 말이다. 살아가며 가장 많은 .. 2020. 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