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유대칠70 다시 한번 영원한 삶을 생각해 봅니다. (더불어 신학으로 읽는 <지혜서>4) 1 자식이 없어도 덕이 있는 편이 더 낫다. 덕망 있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으며, 하느님과 사람들이 다 같이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2 덕이 있을 때에는 우리는 그것을 본뜨고, 없을 때에는 그것을 그리워한다. 덕은 전쟁에서 깨끗한 승리를 거두어, 승리자로서 불멸의 왕관을 쓴다. 3 그러나 악인들에게는 자손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들은 꺾꽂이 나무와 같아서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므로 그 기반이 튼튼할 수 없다. ( 4장 1-3절) '자기 내어줌'으로 더불어 있는 이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 가운데 사라지지 않는 희망이 됩니다. '전태일'을 봅니다. 그는 죽었지만 죽지 않았습니다. 모두를 위해 자기 전부를 내어줌으로 그는 온전히 가장 아름다운 전태일로 우리와 더불어 영.. 2021. 3. 26. 우린 지금 어느 길에 서 있습니까? (더불어 신학으로 읽는 <지혜서>3) 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에 있어서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을 것이다. 2 미련한 자들의 눈에는 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재앙으로 생각될 것이며 3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이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의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 눈에 의인들이 벌을 받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은 불멸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 3장 1-4절) 기꺼이 마주하는 고난은 고난이 아닙니다. 부끄러움 속에서 부끄러움도 모르면서 누리는 기쁨에 비하면 달고 단 은혜입니다. 민중을 총칼로 죽이며 얻은 힘에 기생하여 누리는 기쁨보다 차라리 그 힘에 저항하며 누리는 고난의 길이 달고 단 기쁨입니다. 그것이 신앙이겠지요. 부끄러움도 모르고 부끄러운 길을 웃으며 가는 것보다 차라.. 2021. 3. 25. 더불어 살라 창조하셨습니다. (더불어 신학으로 읽는 <지혜서> 1) 13 하느님은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자들의 멸망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14 하느님은 모든 것을 살라고 만드셨으며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원래가 살게 마련이다. 그래서 피조물 속에는 멸망의 독소가 없고 지옥은 지상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다. 덕스러운 자들은 지옥을 모르며 15 의인은 죽지 않는다. 16 악인들은 행실과 말로써 죽음을 자초하고 죽음을 벗으로 생각하고, 죽지 못해서 애태우며 죽음과 계약을 맺는다. 그들은 과연 죽음과 한 패가 되기에 알맞은 자들이다. ( 1장 13-16절) 죽음과 절망의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죽음을 만들지도 않았고, 멸망을 즐기는 분도 아니십니다. 그분은 죽으라 우리를 만드신 것이 아니라, 살라고 우린 만드셨습니다. 우린 죽으라 만든 존재가 아니라, 살라 만든 존.. 2021. 3. 22. 서재 이야기 1- 나로 가득찬 공간 (일간유대칠 2021 03 20) 내가 사는 마을의 이름은 서재다. 서재는 조선 시대 도여유 선생의 호에서 나온 이름이다. 서재 도여유 선생의 호인 서재가 마을의 이름이 된 것이다. 서재라는 마을은 금호강이 흐른다. 그리고 와룡산이란 작은 산이 올라와 있다. 금호강과 와룡산 사이, 금호강과 누운 용 사이 서재라는 마을이 있다. 마을은 아주 작다. 크지 않다. 그 서재에 나의 공간이 두 곳 있다. 하나는 서재 거의 중앙에 있는 작은 공간인 오캄연구소다. 작은 상점들 사이로 간판도 팔려 있는 곳이다. 이웃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그런 작은 중세 철학과 한국철학 연구의 공간이 바로 오캄연구소다. 이곳에서 쓰인 칼럼들은 앞으로 에 연재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매일 적은 묵상들은 새벽 막상을 메모한 것을 이곳에서 글로 적은 것이 많다. 그렇게 이곳은.. 2021. 3. 20. 이전 1 2 3 4 5 ··· 1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