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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의 교부학 - 그리스도교 문헌의 등장 (2020년 1월 5일) 2. 그리스도교 문헌의 등장 예수 그리스도는 더 이상 눈에 보이는 형태로 사람의 앞에 존재하게 않았다. 그리스도교인에겐 부활과 승천이란 종교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종교적 진실이다. 이제 그가 남긴 말과 삶을 기억하는 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는 것이 그리스도교가 가진 진리를 죽은 과거가 아닌 여전히 생명력을 가진 현재형의 지혜로 있게 수단이 되었다. 처음엔 구전(口傳), 즉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에 의존하였다. 바로 문서의 형태, 즉 글로 기록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당시 많은 이들은 문자에 익숙하지 않았다. 문자로 적는다는 것은 우선 문자에 익숙한 지식인이 다수 있어야 했다. 지금처럼 많은 이들이 문자에 익숙한 시대가 아니었다. 문자로 기록한다 해도 책은 지금과 같이 편하게 들고 다.. 2020. 1. 5.
가난한 이를 향한 조건 없는 사랑, 신앙의 첫 걸음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분노 가난한 이를 향한 조건 없는 사랑, 신앙의 첫 걸음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분노 “제가 여러분을 사랑하였듯이 여러분도 서로를 사랑하세요.” 예수의 부탁이다. 정말 어렵다. 우린 이유 없이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다. 당연히 이유를 찾는다. 만족시킬 외모나 돈 아니면 권력이나 지식 어느 하나라도 마음에 드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움직인다. 예수는 그러지 않았다. 그냥 이유 없이 사랑했다. 어떤 유익도 없지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랑했다. 우리도 우리를 예수와 같이 사랑할 수 있을까? 예수가 우릴 사랑하듯이 우리가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예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고개 돌리며 내 일이 아니라고 했을까? 가난한 장애인의 죽음 앞에서 내 일이 아니라 했을까? 세월호.. 2020. 1. 5.
부끄러움, 희망은 거기에 있다. - 윤동주와 마저리 켐프 부끄러움, 희망은 거기에 있다. - 윤동주와 마저리 켐프 잎새에 바람이 부는 것은 당연하다. 하늘의 푸르름이나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도 자연스럽다. 그저 당연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그 모습을 보일 뿐이다. 그 당연함 앞에 부끄러울 때가 있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을 하지 못할 때다. 윤동주는 그래서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자신이 부끄럽고 시대가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조선 사람이 조선어를 익히지 못하고 조선 역사를 공부하지 못하고 조선 문화를 말하지 못하는 그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 조선 사람이면 당연한 것 앞에서 초라하게 그 당연함을 당연하게 누리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부끄러움은 도덕적 자아를 등장케 한다. 무엇이 바른 길인지 안다면, 부끄러움은 실천 없는 그 도덕적 자아를 흔든다. 부끄럽지.. 2020. 1. 5.
하느님을 향한 참사랑은 그분을 이 땅에 드러내며 살아감이다.- 안트베르프의 하데비치 - ‘사랑의 신학’ 하느님을 향한 참사랑은 그분을 이 땅에 드러내며 살아감이다. - 안트베르프의 하데비치 - ‘사랑의 신학’ 사랑, 가장 흔한 말이지만 가장 그리운 말이다. 설레이며 힘들게 표현해도, 사랑, 그 두 글자로 담아내지 못하는 그 무엇에 항상 부족함을 느끼는 그런 말이다. 사랑, 가장 흔하지만 가장 설레는 말, 어쩌면 우리 삶의 가장 신성한 말일지 모르겠다. 그의 울음을 남의 울음으로 둘 수 없다. 함께 울어야 한다. 그의 아픔을 남의 아픔으로 둘 수 없다. 함께 아파야 한다. 기쁨도 마찬가지다. 울음도 아픔도 기쁨도 둘로 있을 수 없다. 하나로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다. 사랑, 그 이유만으로 말이다. 둘이 될 수 없다. 떨어질 수 없다. 떨어진다는 것이 아픔이다. 둘이 된다는 것이 아픔이다. 하나로 있어야하는.. 2020. 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