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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고전 읽기14

유식혜의 조선 후기 철학사 3: 조선의 현실 더 선명하게 나누어지다. 조선 후기 철학사 강의 3: 조선의 현실 더 선명하게 나누어지다. 1709년 충청도 보령의 한산사에 모인 권상하의 제자들은 당시 조선 사회의 현실에 대한 뚜렷하게 구분되는 두 가지 정치-존재론을 제시하였다. 하나는 위계의 질서를 더욱더 단단하게 강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다 더 유연한 모습으로 존재론적 평등의 가능성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 두 가지는 조선 후기 호락논쟁의 두 갈래 입장들이 된다. 그 가운데 ‘호론’은 권상하-한원진의 학맥으로 이들은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의 본성은 다르다는 결론을 의심하지 않았다. 정치-존재론스럽게 이야기한다면, ‘양반’과 ‘양반 아닌 이’의 본성은 다르다는 결론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앞선 강의에서 소개한 이간의 입장을 긍정하는 ‘낙론’의 입장은 달랐다. 김창.. 2020. 12. 30.
유식혜의 조선 후기 철학사 2: 1709년 현실에 대한 두 가지 시선이 등장하였다. 조선 후기 철학사 강의 2: 1709년 현실에 대한 두 가지 시선이 등장하였다. 효종의 시대부터 숙종의 시대까지 정계와 학계를 누비며 큰 영향력을 행사한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제자인 권상하(權尙夏, 1641~1721)의 제자들이 1709년 충청도 보령의 한산사에 모였다. 송시열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은 조선 후기 성리학의 역사를 이해함에 도움이 된다. 간단하게 소개하면, 그는 전적으로 주자의 학설을 계승하는 것을 강조하였고, 자신이 그러한 인물이라 자부하였다. 조광조(趙光祖, 1482~1519)에서 이이(李珥, 1536~1584) 그리고 김장생(金長生, 1548~1631)으로 이어지는 조선 기호학파의 학통을 이어가는 사람이라 스스로 자부하였다. 그런 그에겐 유명한 제자들이 있었다. 권상하는.. 2020. 12. 29.
유식혜의 조선 후기 철학사 1: 왜 호락논쟁을 강의하려 하는가? 유식혜의 조선 후기 철학 강의 1: 왜 ‘호락논쟁’을 강의하려 하는가? 나는 철학사를 ‘정치-존재론’의 관점으로 읽어간다. 철학사란 지난 철학을 돌아본다는 것이고 나는 지난 철학의 삶을 그런 관점에서 돌아본다는 말이다. 나의 책 도 어쩌면 그러한 맥락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저런 화려한 형이상학적 논의들도 대체로 아니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진지하게 다룬 거의 모든 형이상학적 고민들은 정치적 맥락 속에서 활용되었고 폐기(廢棄)되었다. 설령 철학자의 의도가 그렇지 않아도, 그 철학자의 철학은 그렇게 소비되었다. 어쩌면 철학의 쓸모는 바로 그것이었다. 정치적 필요 말이다. 플라톤에게 와 은 어쩌면 자기 철학의 이유다. 그가 철학을 한 이유는 그저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교양을 확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 2020. 12. 28.
붓다의 마지막 가르침,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대장장이 쭌다의 공양으로 싯다르타는 눕게 됩니다. 좋은 마음으로 함께 하려 한 공양이 싯다르타의 마지막을 부르게 됩니다. 싯다르타는 자신의 마지막에 쭌다를 걱정합니다. 사람들이 그의 탓을 하며 어찌 하나 걱정을 합니다. 싯다르타는 자신의 제자 아난다에게 부탁합니다. "이보시오, 아난다. 누군가 쭌다에게 이와 같이 말한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요. '쭌다여! 그대의 공양으로 스승께서 마지막 열반에 이르게 되었고, 이 모든 것이 그대의 실수 때문이오!' 그러나 쭌다의 슬픔을 이와 같이 말해주시오. '친구 쭌다여! 그대의 공양을 마지막으로 드시고 스승께서는 열반에 드신 것은 그대의 공덕이며 행운입니다. 이보시오, 쭌다여, 나는 이 말씀으로 스승이신 부처님에게 직접 들었소'" (마하빠리닙바나 경 4,42) 싯다르타.. 2020. 1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