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캄연구소394 고난의 주체가 희망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오랜 시간 인류는 신분제 사회를 당연시 하고 살았다. 당연히 태어나며 정해진 신분이 그의 삶 전체를 지배했다. 양반이나 귀족으로 태어나면 그의 삶은 큰 노력 없이 많은 것을 누리며 살 것이고, 노예나 노비로 태어난다면 그의 행실과 무관하게 그는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았다. 그리고 노력을 한다 해도 그 삶이 달라지지 않았다. 그 조직의 부조리를 온 몸으로 당하며 살아온 이들은 바로 그 낮은 자리에 있는 이들이다. 구한말 사회적 무시 속에 살았던 기생들 중 상당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 부조리한 운명에 대하여 고민하여 스스로 새로운 대안을 궁리하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유학을 떠나려 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사상을 일구어가며 부조리를 일상이 아닌 나쁜 것으로 여기는 세상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2019. 11. 8. 형이상학 읽기 3 유대칠의 바로 그 고전 형이상학 읽기 3 "각각의 본질은 그 자체로 (다른 것에 의하지 않고) 이야기되는 것이다. 너라는 존재임이 음악적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너는 너 자체로음악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너가 너자체로 그것인 바가 본질이다." (1029b13-16) 나는 누구일까? 나의 온전한 본질은 나는 나 자체로 나라는 것 이외 다른 것이 아니란 것이다. 나의 본질은 누군가의 친구나 누군가의 애인 혹은 대구에 산다는 것이나 체크무늬옷을 좋아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나의 밖에 있는 것이다. 나의 밖에 있는 것이 나의 본질일 순 없다.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은 나의 학벌도 나의 재산도 아닌 바로 나다. 누군가를 이겨서 만들어진 나도 패배하는 누군가가 없다면 사라질 나 .. 2019. 11. 4. 삶으로 다가오는 계시 쉽지 않다. 나름 열심히 살지만 주변에서조차 응원보다는 조롱이 더 흔하다. 날 믿는 이도 지지하는 이도 많지 않지만 그래도 혼자 살 수 없는 것이 삶이다. 더불어 살기보다 이기며 살라는 말에 익숙한 이들 가운데 나는 치열하게 싸우며 패배자가 되고있다. 이게 내 삶이다. 죽으라 할 일이 많지만 아무 하는 일 없는 이 사회의 쓰레기로 여겨지는 부지런한 쓰레기말이다. 그래도 치열하게 오늘도 부지런히 산다. 그게 나다. 그럼에도 나는 너에게 희망을 건다. 그게 바로 나다. 조롱과 무시의 낱말로 쓰인 이 힘겨운 삶이 나에게 계시로 다가온 바로 그것이다. 내 몫의 내가 되는 나의 과제다. 힘들고 아픈 내 삶의 몫이다. 내 있음의 일이다. 너와 더불어. 2019. 11. 1. <형이상학> 읽기 2 유대칠의 바로 그 고전 - 형이상학 읽기 2 “다른 동물들은 인상과 기억으로 살아가지만, 그들은 경험을 가지지 못하는 것에 비하여, 사람은 기술과 이성의 작용으로 살아간다. 사람은 기억으로 부터 경험이 일어난다. 동일한 것에 대한 여러 기억들이 하나의 경험을 만든다.” (980b25-981a1) 한국말로 전달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여기에서 인상과 기억은 개별적인 지각에 가깝다고 생각하자. 나는 ‘이 자장면’과 ‘저 자장면’에 대한 감각 인간과 기억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영화 우뢰매를 보기 전 동생과 나와 함께 대구 신도극장 옆 중국집에 간 적이 있다. 아버지는 자장면을 두 그릇 주문하셨다. 나와 동생은 남기지 않았고, 아버지는 그냥 마치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닌 일상의 한 부분이라도 되는 .. 2019. 11. 1. 이전 1 ··· 88 89 90 91 92 93 94 ··· 9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