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칠463 이어지고 뭉치고 흩어지고 다시 이어지며 뭉치는 역사의 장.[ 숲 (이응노 2981년 작)] 한지에 잉크로 그려진 숲은 매우 역동적입니다. 중앙에 드러난 큰 몸짓이 두드러져 보이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빈 공간에 강한 여백을 배경으로 그려진 획이 아닙니다. 공간의 배경인 듯이 그려진 듯 보이는 작은 몸짓들도 무엇인가 하나의 이상한 질서 속에서 혼돈의 외침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결코 중앙의 큰 몸짓만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듯이 그림의 경계 부분에서 강한 몸짓이 그림 밖 미쳐 이 그림에 담기지 못한 부분에서의 큰 몸짓을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이게 합니다. 숲은 1981년 작입니다. 박정희는 시대가 사렸지만 역시자 독재는 그대로 이어집니다. 전두환의 잔혹한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광주에선 많은 이들이 시대의 어둠에 항거하며 죽어갔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역사의 영웅으로 그 이름이 그 높이 .. 2020. 11. 9. 더불어 있음의 존재론: '누구임'과 '있음'에 대한 메모 나는 '있다'. 그 사실은 의심할 수 없는 내 있음의 '어쩔 수 없음'이다. 나는 '있다'. 그것도 여기에 있다. 이런저런 의심으로 지금 여기 나를 고민할 수 있지만 결국 나는 여기에 있다. 그런데 그 '있음'이 삶을 살지 않는다. 삶 속 나의 '있음'은 항상 '누군가와 있다'. 그 누군가가 경우에 따라선 사람이고 물건이고 사건이고 역사일 수 있다. 그러나 항상 '누군가와 있다'. 그 누군가와 있으며 동시에 나는 그 누군가에게 '누구'가 된다. 바로 철학의 순간이다. '누구'가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저 '홀로' 있을 때 '나의 있음'은 '그저 있음'이지만 '더불어' 있을 때 '나의 있음'은 '누구로 있음'이다. 나는 항상 누군가에게 '누구'이다. 나의 '누구임'이 나의 '모두'는 아니다. 그러나.. 2020. 11. 9. 더불어 있음의 존재론 1. 참으로 무엇으로 있는 것에 대하여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것의 가장 근원적인 바탕이 되는 것을 헬라 사람들은 우시아(Ousia)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을 흔히 일본과 한국에선 '실체'라고 번역합니다. 실체는 다르게 되지 않으며 다른 것에 그 존재를 의존하지 않는 그러한 존재입니다. 라틴어로는 숩스탄씨아(substantia)라고 합니다. 이것은 라틴어로 악치덴스(accidens)라고 불리는 것과 다릅니다. 악치덴스는 흔히 우연히 있다는 의미에서 '우유'라고 번역합니다. 유대칠의 머리 모양이나 유대칠이 사는 곳 그리고 유대칠의 소유하는 것 등은 유대칠의 본질을 다르게 하지 못합니다. 유대칠은 대구에 사는 사람이지만 대구에 사는 사람이란 장소에 대한 서술이 유대칠의 본질은 아입니다. 유대칠은 이 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 2020. 11. 8. 행복하여라 3 - 과연 어느 것이 행복한 삶일까? 복되어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상속받으리니. (마태오복음 5장 5절) 어린 시절부터 이 말이 참 힘들었습니다. 부드럽고 온화한 이들은 종종 바보 대접을 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어른들의 말처럼 온화해서는 안 되고 독해야 이 세상을 살아남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다시 가만히 생각하면 결국 목소리 큰 놈의 시대는 잠시입니다. 그들끼리 서로 목소리 크게 싸우다 지워져 가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과거, 민중은 자신의 생명마저 지배자의 손에 맡기고 살았습니다. 죽으라면 죽었습니다. 산 채로 지배자의 무덤에 묻어 버리기도 했지만 분노하지 못했습니다. 태어나면서 노비인 사람은 자기 삶에 대한 어떤 노력에 대한 평가도 없이 그냥 노비라만 살았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노비이고.. 2020. 11. 7. 이전 1 ··· 51 52 53 54 55 56 57 ··· 11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