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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철학학교237

종교는 마약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보아라! 이 현실을! 종교는 마약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보아라! 이 현실을!: 중세 유럽의 아픔을 통해 본 참된 신앙과 신비란? 그럴 때가 있다. 차라리 모든 것이 거짓이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다. 보이는 것은 눈물이며, 느껴지는 것은 슬픔뿐일 때가 있다. 그때 삶은 그냥 아픔이다. 몸의 아픔은 약으로 치유되지만, 마음의 아픔은 약도 없다. 그땐 모든 것이 거짓이면 좋겠다 싶다. 차라리 보이는 모든 것이 가짜이면 좋겠다 싶다. 그럴 때가 있다. 나도 그랬다. 2009년이다. 교통사고로 다리가 불편하신 어머님께서 두 다리를 수술하셨다. 성공적인 수술이 끝나고 멀지 않아, 내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두개골 골절, 얼굴 안면 골절, 발목 골절 등으로 1년 동안 7번의 크고 작은 수술을 했다. 치료가 거의 끝날 무렵, 아버지께서 암 .. 2019. 9. 26.
아픔을 공유하고 소유를 공유하라. 그것이 신앙이다. 바실리우스 주교의 분노 아픔을 공유하고 소유를 공유하라! 그것이 신앙이다. : 바실리우스 주교의 분노 벌써 수년 전부터다. '공정거래'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착취하듯 빼앗아 오지 말고, 제대로 값을 주자는 것이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그 당연함이 오랜 시간 당연하지 않았다. 어느새 지구인에게 커피는 일상이다. 엄청난 양의 커피가 소비된다. 그러나 커피를 생산하는 국가는 가난하기만 하다. 그들은 정말 열심히 일한다. 하늘을 보면서 날씨도 확인해야 하고, 하나하나 직접 맨손으로 열심히 노동한다. 그 매일의 노력으로 고급 커피를 생산한다. 하지만 막상 거대한 자본의 힘 앞에 자신의 노동대가를 받기는커녕 그 결실을 빼앗긴다. 그래도 커피 이외 마땅히 할 것이 없기에 그들은 죽을힘으로 커피를 생산하고, 그 결실을 .. 2019. 9. 26.
소유에서 공유로! 교부 클레멘스의 분노 소유에서 공유로! 나눔이 신앙이다. : 교부 클레멘스의 분노 철학은 현실을 마주하며 시작한다. 신학도 다르지 않다. 특히 그 현실이 아픔이라면 더욱 더 그러하다. 철학은 그 아픔에서 시작한다.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플라톤에겐 철학의 출발점이 된다. 왜 스승은 죽어야하는가? 무엇이 죽였는가? 도대체 무엇이 현실이기에 스승은 이리 살다가 사라져야하는가? 청년 플라톤은 분노했다. 스승의 이상향이 좌절되는 현실 앞에서 플라톤은 분노했다. 그리고 그 분노, 현실을 마주한 그 분노에서 플라톤의 철학은 시작되었다. 굳이 그리스철학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싯다르타를 보자. 왜 죽어야하는가? 왜 늙어야하며, 왜 아파야하는가? 사랑으로 기뻐해도 결국은 헤어지고 무뎌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면, 왜 이 허망한 세상을 살아.. 2019. 9. 26.
유대칠 암브로시오의 성경 읽기 7 2019년 9월 7일 토요일 새벽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태양은 뜨고 지지만 떠올랐던 그곳으로 서둘러 간다. 남쪽으로 불다 북쪽으로 도는 바람은 돌고 돌며 가지만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코헬렛 1장 2-6절 히브리말로 ‘허무’라는 말은 ‘입김’과 ‘실바람’을 뜻한다. 참 적절한 말이다. 입김은 금세 사라진다. 우리네 호흡이란 것도 결국 입김이다. 아무리 길다 해도 금세 사라진다. 죽는다. 지금 치열한 모든 것은 어느 순간 찾아온 죽음 앞에서 그저 허무할 것이다. 그러니 입김이나 실바람이 추상적으론 허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 2019. 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