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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강학회123

너의 아픔과 더불어 나아가는 신앙... “어느 누구도 종교를 개인의 내밀한 영역으로 가두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요구할 수 없습니다. 종교는 국가 사회생활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말라고, 국가 사회 제도의 안녕에 관심을 갖지 말라고,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에 대하여 의견을 표명하지 말라고, 그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요구할 수 없습니다. … 참다운 신앙은 결코 안락하거나 완전히 개인적일 수 없는 것으로서, 언제나 세상을 바꾸고 가치를 전달하며 이 지구를 이전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곳으로 물려주려는 간절한 열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 모든 그리스도인은, 또 사목자들은 더 나은 세계의 건설에 진력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복음의 기쁨, 183항) 나를 그저 홀로 있는 나로 마주하는 신앙은 우리 가운데 타자의 아픔에 무감각해지고 그 아.. 2019. 12. 14.
혼이 녹아든 기도와 같은 삶... 우리는 하나되어 주님에게 나아갈 것이다. 말로 하는 기도는 참으로 흔하고 흔하다. 많이들 한다. 여기 저기에서 참 많이 한다. 주님의 기도는 가톨릭교회에서도 많은 개신교회에서도 동방정교회와 성공회에서도 하느님을 향하여 올려진다. 말로는 참으로 흔하게 하는 기도다. 그런데 과연 우리의 삶은 그렇게 살고 있을까? 그 기도가 말에서 그치지 않고 혼에 녹아든 기도라면, 그 기도의 내용은 삶이 되어야 한다. 치쁘리아누스는 우리 주님이 가르쳐주신 그 기도는 우리 신앙의 토대이고 기둥들이고 영양분들이라고 했다. 그리스도교 신자로 우리의 삶이 오롯이 살아지는 따스한 집이 우리의 신앙이라면, 그 신앙이라는 집이 세워질 흔들리지 않는 토대, 그리고 단단하게 올려져 비바람을 막아줄 지붕과 벽이 기댈 단단한 기둥들이 필요하다. 또 이런 저런 이기적인 욕심으로 부터 .. 2019. 12. 14.
더불어 삶이 신앙의 삶입니다. “하느님의 성전과 같이 살아야 한다”고 할 때, 치쁘리아누스(Cyprisnus, 200/210?-258)는 converso(꼰베르쏘) 동사를 사용합니다. 이 동사는 그냥 '살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가 아닙니다. 같이 더불어 산다는 의미입니다. '벗'으로 더불어 살고 '부부'로 더불어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더불어' 산다는 말입니다. 홀로 가다가 더불어 돌아와 더불어 산다는 말입니다. 치쁘리아누스는 하느님의 성전과 같이 살아야 한다고 말 할 때, 그냥 '홀로 살다'가 아닌 '더불어 살다'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하느님은 단지 나만의 '나'의 하느님이 오직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그 분은 우리 모두의 하느님, 하나 되어 있는 것이 우리 자신의 원래 모습이라 치쁘리아누스는 말합니.. 2019. 12. 10.
나만 아프다... "다만 그의 몸은 자기의 아픔만을 느끼고 그의 영은 자신만을 애통해합니다." 욥기14장22절 그 많은 고마움은 보이지않고 그저 나만 아프다 생각한다. 그 아픔에만 집중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 앞에 당장 누구 찾아와 죽음의 고통을 당하지만 보이지않는다. 결국 나도 그도 모두 홀로 외로운 신앙을 이어간다. 경우에따라서 이기적인 신앙이 되기도 한다. 우리로 함께 있지 못하고 흩어져 버리기도 한다. 각자 각자 그렇게 저마다 자기 아픔에서 한걸음도 나서지 못한다. 눈을 떠 내 앞 아픔에 다가가자. 다른 이유없다. 그냥 더불어 안아주자. 그가 홀로 아프지 않게 우리됨을 보여주자. 그때, 나도 이 홀로된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곳에 하느님 역시 더불어 있으시리라 믿는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 2019. 1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