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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캄연구소394

국산외국인이 되지말자! 勿爲國産外國人 김익진 선생님에 대한 글을 읽으며 마주한 말입니다. 국산 외국인이 되지말자는 말이지요. 국산 외국인. 이 땅에서 이 땅의 사람으로 고민하지 못하고 남의 답으로 그것이 더 우월하다며 살아간다면 그것이 국산 외국인이겠지요. 조선은 중국의 답이 정답이라며 그 답을 부여 잡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 답을 이리 해석하고 저리 해석 하면서 말이죠. 우리는 우리가 중심이 되어 사고 했던 적이 얼마나 될까요. 이젠 안된다는 마음, 어차피 우리는 남의 변두리에서 남을 그리워하며 살아야하고 나란 존재도 그 정도일뿐이라 생각한다면 어차피 남의 변두리에 있을 뿐이라 생각한다면 우리 철학이란 것도 남의 답을 달달 암기하고 요약정리하는 것 뿐이겠지요. 지금 처럼 말입니다. 자기 철학없는 철학노동자들 가득하며 그저 .. 2019. 11. 25.
하느님은 그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의 마음을 듣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그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의 마음을 듣는 분이십니다(Deus non uocis sed cordis audior est). 치쁘리아누스는 크고 요란한 기도 보다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으로 하는 기도를 강조합니다. 형제자매가 하나되어 하는 기도, 누군가 더 나서는 기도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가 서로의 아픔을 안아주면서 하나 되어 올리는 기도, 그런 기도를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혹시나 누군가 자신의 과도한 욕심으로 큰 소리를 내며 기도하는 이들을 두고 "하느님은 그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의 마음을 듣는 분이십니다"라고 합니다. 참 바른 가르침입니다. 신앙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이 봉사했으니 내가 남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서 당연히 높임을 받으면서 신앙을 해야 한다는 그 마음.. 2019. 11. 24.
기도하는 이는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기도하는 사람은 말이나 청원함에 있어 절제하고 조용하고 ‘부끄러움(pudorem)’이 있어야 합니다. 치쁘리아누스의 에 나오는 말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말이나 청원함에 있어 절제있고 조용하고 부끄러움을 알아야 합니다. 참 좋은 말입니다. 기도하는 사람, 조금 의미를 좁혀서 신앙이란 것을 가진 이들은 부끄러움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하느님'에게 기도한다지만, '우리'라는 말이 참 어색하게 이기적 기도를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나의 행복과 나의 소유와 나의 권력과 나의 높음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심지어 조금 높은 자리에 오르고 조금 더 많이 가지고 조금 더 많은 권력을 가지면 그것을 가지고 '나'를 도운 하느님이라며 자랑을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부유함은 누군가의 아픔을 조건으로 가능한 세상입니다.. 2019. 11. 23.
중세 철학의 자리는 어디인가? 중세철학의 자리는 어디인가?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 그것이 철학이 될 수 있는가? 나의 존재론적 과거, 나의 근원적 토대, 그 출발점(arche)를 상기한다는 것은 철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플라톤 역시 지금 여기 있는 이 존재의 존재론적 근원을 향하여 상기하는 것일 수 있으며, 그 상기 자체, 그 기억함 자체가 그의 철학에 있어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저 물리적으로 과거에 있던 일을 기억한다는 것이 철학이 될 수 있을까? 남의 나라, 남의 과거, 그 공간과 시간이 모두 남인 그들의 시간과 공간 속 철학을 그들의 남으로 있는 나란 존재가 기억하고 상기하는 것은 그냥 과거 일에 대한 기억인가 철학인가? 제대로 알지 못한 지적 호기심의 만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일까? 과거의 중세를 기억한.. 2019. 1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