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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조금도 고상하지 않은 지금 여기 현실의 아픔에 아파하는 지혜이면 좋겠다. (유대칠의 슬기네 집) 각자 자기 이야기하면 됩니다. 나와 다른 생각이라면 그냥 나와 다른 그와 내가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하면 된다. 그냥 다른 거지 그가 틀렸다고 단언하지 않으면 된다. "너는 틀렸어! 이게 답이야!" 이런 식의 이야기하지 않으면 된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해" 그냥 그러고 서로 다른 생각을 확인하면 된다. 굳이 승자와 패자가 필요하진 않다. 그냥 자기 생각에선 자기가 승자라고 생각해도 굳이 승자라는 개념으로 자신을 묶을 필요는 없다. 그렇게 살면 스트레스받는다. 승자란 개념으로 웃고 있어도 패자가 될 불안감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제법 많은 관념 다툼은 어느 하나가 절대적으로 정답인 그런 것도 없다. 나는 과거 어느 철학자도 사실 절대적인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나보다.. 2024. 4. 27.
지금 우리에게 참 철학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유대칠의 슬기네집) "사랑은 구체적인 생명활용이요, 결코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다. 종교도 구체적인 것이요,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물론 보편적인 진리지만, 보편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추상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물질이라 부르는 세계에 있어서는 가장 보편적이려면 추상적이 되어야 하지만, 정신의 세계에서는 그와 반대다. 가장 구체적이 아니고는 가장 보편적일 수가 없다." 함석헌, , (한길사, 2002) 49쪽 그렇다. 사랑이 추상이 되는 순간, 그 사랑의 숨은 끊어진다. 죽어지고, 박제가 되어 고정된다. 어디서나 사랑이지만, 어디서도 사랑이 아닌 죽은 사랑 말이다. 사랑은 구체가 되어 있어야 한다. 지금 여기 살아서 너를 향해 다가가 네가 바로 나라고 외치는 그 씨알의 소리일 때 사랑은 제대로 산 거다. 종교라고 무엇.. 2024. 4. 16.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 라틴어 '창세기' 1장 1절을 읽고 묵상 1 하느님을 부른다는 것 (유대칠의 슬기네집) 여러 '창세기 1장 1절' 읽고 묵상 유대칠 옮기고 씀 참 다양한 구약 원문이 있다. 히브리어로 쓰인 마소라 사본만이 유일한 본이라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매 순간 각자의 말로 말을 걸어오는 하느님이라 생각하면 매 순간 쉼 없이 번역되고 또 번역된 경전 하나하나가 ‘역본(譯本)’이 아닌 ‘원본(原本)’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아주 오랜 과거 유대인에게 하느님은 함부로 부를 수 없는 존재였다. 하느님을 두고, יהוה(Yah·weh), 흔히 모음이 없는 히브리 문자로 인해 YHWH로 쓰고 ‘야훼’라고 읽지만, 막상 과거 그들은 이 문자 자체를 신명사문자(神名四文字, τετραγράμματον(테트라그람마톤))로 여기고 비록 그렇게 쓴다 해도 그렇게 읽지 않았다. יהוה(Yah·weh)라고 적지.. 2024. 4. 2.
무엇이든 열심히 하자... 내 철학 애씀도 조금 더 쓸모 있으면 좋겠다. 나는 소장으로 하루를 보냈다. 세 명에게 할 일을 각각 분담하고 상황에 따라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도 정하고 언제 쉬어야 할지도 정하고 나를 포함해 일하는 이들이 지키지 않게 말이다. 몇 번 나는 온전히 소장의 일을 했다. 필요한 장비를 렌탈하고 렌탈을 위해 용달을 사용하고 비용을 사용하고 비용을 청구하고... 이렇게 나는 철거의 본류에 서서히 다가가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나는 온전히 진짜는 아니다. 그만한 기술도 없고 그만한 경험도 없으니 아직 많이 부족하다. 더 많은 일을 했어야 했는데... 그 일을 다 하지 못하고 3월도 마지막을 향하고 있다. 중세 철학은 열심히 했지만 남의 눈엔 항상 출발선 어딘가에서 제대로 출발 못하고 서성이는 부족한 무엇이었고, 철거도 비슷하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에 더 .. 2024. 3.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