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존재론94 너 없이 나, 나는 결국 너와 더불어 있음이다. 내 앞에 너를 이기고 구원을 얻으려 한다면, 참으로 나쁜 구원이다. 너의 아픔을 거름으로 얻는 구원이라면 참으로 나쁜 구원이다. 결국 나는 너와 싸워야 한다. 때론, 나만 구원되기 위해 침묵해야 한다. 그냥 그대로 너는 지옥에 가고 나는 천국에 가기 위해 말이다. 너와 싸우다 너가 아프면 그것은 신의 선택을 받지 못한 너의 운명이고, 너와 싸우다 내가 아프면 그것은 신을 향한 고난의 길이다. 신앙의 길이다. 그 신앙에 너는 없고 나만 있다. 사회에 무리를 일으키는 많은 종교가 그렇다. 악이라도 스스로는 선이라 한다. 아무리 사악해도 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한다. 보이고 생각하는 것은 그저 '나' 하나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결국 신도 나 한 사람의 사후 행복을 위한 수단이다. 그 이상한 이기심의 동지가 .. 2020. 2. 26. 우리는 힘들다 바이러스가 우리 됨이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고 있다. 너의 아픔은 그냥 너의 아픔이니 죽어라! 너만 죽으면 그만이다. 너에 대한 조롱과 거부, 결국 너는 남이 되어 있음을 확인한다. 우리 가운데 너의 아픔도 나의 아픔이란 말은 아직 이곳엔 먼 이야기다. 이런 아픔 중에도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자극적인 시위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에 대한 비판도 비합리적인 조롱으로 거부한다. 적어도 이런 이들이 이 땅 국회의원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자기 욕심의 대변?인은 되겠지만, 우리를 대표할 사람은 안 되겠다. 대구와 경북 사람은 오지말라는 말도 참으로 무섭다. 2020. 2. 22. 있다와 아니 있다. 포항 바다. 있다. 아니 있다. 있다. 아니 있다. 그렇게 파도가 친다. 있다는 말은 아니 있음으로 뜻을 가지고 아니 있음도 있음으로 뜻을 가진다. 서로가 서로에게 남이 아니다. 있다와 아니 있다는 서로가 서로의 까닭이다. 2020. 2. 6. '더불어 있음'의 좋음 (2020/01/20) '더불어 있음'의 좋음 '더불어 있음'은 하나뿐인 좋음이 아니다. 나누어진 둘의 좋음도 아니다. 둘이 하나 되어 좋음이다. 그것이 참된 좋음이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좋을 순 없다. 그 홀로 됨의 끝엔 외로운 죽음 뿐이다. 그러나 세상이란 원래 홀로 뿐이라 믿는 이들이 있다. 자식도 어쩔 수 없는 짐이고 배우자도 짐이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자신과 같은 이상을 가지지 않으면 그저 짐이다. 다름과 같이 있는 것이 힘겨운 일이다. 더불어 있음의 좋음은 하나로 통일된 좋음이 아니다. 서로 다른 둘이 서로 다른 둘로 만나 행복합니다. 나와 다른 취향과 모습으로 행복한 그의 열심이 기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농사를 짓는 이와 요리사를 생각해 보자. 농사를 짓는 이의 까닭은 좋은 농작물이다. 요리를 하는.. 2020. 1. 20. 이전 1 ··· 13 14 15 16 17 18 19 ··· 2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