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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신학199

착한 행복 (2020년 02월 07일 서재강학회 강의록) 착한 행복 유대칠 암브로시오 강의 2020년 02월 07일 서재강학회 강의록 “탐욕스러운 인간은 이윤이 남는 것 말고는 선(좋은 것)이라고 부를 줄 모릅니다.” 어쩌면 일상의 상식이 된 말이다. 그런데 암브로시오는 왜 이 말에 그렇게 분노한 것일까? 이것은 신앙도 아니고, 도덕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다. 이것은 불행한 삶을 살기 위한 다짐이다. 이것을 교육하는 것은 불행하자는 교육이다. 이것이 신앙이란 이는 나쁜 신앙이고, 이것이 행복이라면 그것은 나쁜 행복이다. “네 의지의 준칙(격률)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 하라.” 칸트의 ‘정언명법’ 혹은 ‘정언명령(定言命令, Categorical Imperative)’이다. 이 말의 뜻은 도덕이란 이 세상의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 2020. 2. 7.
있다와 아니 있다. 포항 바다. 있다. 아니 있다. 있다. 아니 있다. 그렇게 파도가 친다. 있다는 말은 아니 있음으로 뜻을 가지고 아니 있음도 있음으로 뜻을 가진다. 서로가 서로에게 남이 아니다. 있다와 아니 있다는 서로가 서로의 까닭이다. 2020. 2. 6.
유대칠의 <대한민국철학사> 신간 소개 (일간유대칠 13호 2020년 02 01) 유대칠의 신간 소개! 철학이 무엇이든 그것으로 무엇을 하든 내가 이 번 책으로 하려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이 사회에서 필요 없다 버려진 그 고난의 주체, 그 주체가 철학의 대상이나 통치의 대상으로만 있을 것이 아니라, 이제 스스로 자기 철학의 주체가 되고 자기 역사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적어도 철학에 대한민국이란 국적을 표기했다면, 국민(민중)이 역사의 주체가 되는 것이 헌법으로 보장되는 이 나라의 철학이라면, 그 철학의 주체 역시 이 땅 바로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유럽에 있는 중세와 근대의 갈림길에 대한 고민보다 우선 내가 하려는 것은 이 땅의 지금은 과거 조선과 구분지우는 일이었다. 조선철학과 한국철학을 나누겠다는 것이다. 조선의 철학은 한국의 철학이 아니다. 조선이란 사회는 윗사.. 2020. 2. 1.
그는 그래도 그렇게 살겠단다. (일간유대칠 12호 2020 01 30) 그는 무척 가난한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돈 없는 부부에게 산부인과는 먼 곳이었다. 하지만 의료인의 도움없이 허망하게 죽은 첫 아이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겨우 생각한 것이 보건소였다. 그는 그렇게 보건소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에 전기를 소비하는 것은 백열등과 라디오 뿐이었다. 연탄불에 난방과 조리를 해결했고 방이라고는 그후로도 한참을 단칸이었다. 아비는 무능했다. 형이 죽으면 갑자기 첫째가 된 그는 사랑 받지못하고 살다 의무만 커진 사람이다. 그러나 그 의무란 것을 담아낼 능력이 없었디. 열심히 교회를 다녔지만 그를 기억하고 그의 편이 되는 이는 없었다. 믿는 이들 마다 가난한 그에게 사기를 쳤다. 다쓴 원고가 다른 이의 이름으로 제법 잘 팔리는 것을 보고도 제대로 다투기 보다는 포기에 익숙했다. 그래.. 2020. 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