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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신학199

더불어 살라 창조하셨습니다. (더불어 신학으로 읽는 <지혜서> 1) 13 하느님은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자들의 멸망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14 하느님은 모든 것을 살라고 만드셨으며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원래가 살게 마련이다. 그래서 피조물 속에는 멸망의 독소가 없고 지옥은 지상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다. 덕스러운 자들은 지옥을 모르며 15 의인은 죽지 않는다. 16 악인들은 행실과 말로써 죽음을 자초하고 죽음을 벗으로 생각하고, 죽지 못해서 애태우며 죽음과 계약을 맺는다. 그들은 과연 죽음과 한 패가 되기에 알맞은 자들이다. ( 1장 13-16절) 죽음과 절망의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죽음을 만들지도 않았고, 멸망을 즐기는 분도 아니십니다. 그분은 죽으라 우리를 만드신 것이 아니라, 살라고 우린 만드셨습니다. 우린 죽으라 만든 존재가 아니라, 살라 만든 존.. 2021. 3. 22.
하느님의 뜻을 다시 생각해봅시다. <모든 형제들> 읽기 11 3.1 혁명의 날! 한국 가톨릭 교회는 조용했습니다. 오히려 강요된 침묵이 교회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일본의 눈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강자의 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어나는 민중의 외침에 거리를 두고 오히려 대죄라며 막아섰습니다. 치욕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종교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정의를 위하여 일어나는 힘이 되어야 합니다. 종교가 강자의 뒤에 숨어 있다는 것, 민중의 아픔에 고개 돌리고 있다는 것,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자기 종교의 이득을 위한 것이라며 오히려 그 악조차도 악인지 모른다면 문제는 더욱더 심한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미얀마/버마 가톨릭교회 역시 이러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에 인용된 미얀마/버마 가톨릭 평신도 활동가 마웅 요한 박사의 말을 읽어봅시다. .. 2021. 3. 18.
그냥 거룩해 보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형제들> 읽기 10 설령 그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아프고 힘겨운 이를 도와야 한다는 마음속 울림은 양심의 소리이며 내 안에 울리는 하느님의 음성이기도 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어렵고 힘겨운 신 존재 증명보다 어쩌면 신자들이 그 소리에 충실하여 산다면 하느님을 모르는 더 많은 이들이 하느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누군지도 모르는 이라도 힘들고 어려우면 그들의 옆에서 그들과 더불어 있는 것이라 제대로 경험하게 된다면 말입니다. 모두가 각자의 돈을 우선시하는 자본이 왕인 세상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대가 없이 다가서는 이러한 삶은 정말 기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현실로 돌아와 보면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힘들고 아픈 이들의 편에 서서 그들과 더불어 있지 않습니다. .. 2021. 3. 18.
누가 나의 이웃인가요? <모든 형제들> 읽기 9 얼마 전 한 교사가 학생들에게 우리 사회의 불가촉천민이 어떤 이들인지 숙제를 낸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참 경악스러운 일입니다. 모두에게 평등을 가르쳐야 할 교사가 학생들에게 우리 사회의 '불가촉천민'을 조사해보란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아픈 일인지요. 혹시나 그 숙제를 해야 하는 학생 가운데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불가촉천민으로 적어야 하는 이들이 있진 않았을까요.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그리 큰 대접을 받지 않은 일을 하니 말입니다. 아무리 아니라 해도 많은 이들이 그런 직업과 그런 소득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있는 것도 차별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아프고 슬픈 죄업의 현실이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어떻게 그런 잔인한 숙제를 아이들에게 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숙제를 통하여 역으로 .. 2021.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