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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존재론174

'한국'은 과연 '우리'인가? 나는 나를 문제삼을 수 있을까? 나는 나를 반성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까? 쉽지 않다. 어느 순간 합리화 속에서 나를 쉽사리 용서한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저런 상황이니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남의 탓이다. 남들이 나를 힘들게 하고 남들이 부족하고 남들이 잘못한 것이다. 나는 나를 문제 삼고 어느 순간 그렇게 나는 남의 탓으로 아파하는 이가 된다. 그런데 나 역시 남에게 남이다. 나도 남이다. 나라는 남으로 인하여 아파하고 상처받는 이들이 있다. 나를 탓하며 자신의 아픔을 이해하는 이들도 있다. 나는 모른다. 나는 남이 되어 있지 않기에 말이다. 나는 나라는 틀에서 나를 문제 삼을 수 없기에 말이다. 그렇게 나는 나를 문제 삼을 수 없다. 남을 변화시킬 수도 없다. 나.. 2019. 9. 27.
종교는 마약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보아라! 이 현실을! 종교는 마약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보아라! 이 현실을!: 중세 유럽의 아픔을 통해 본 참된 신앙과 신비란? 그럴 때가 있다. 차라리 모든 것이 거짓이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다. 보이는 것은 눈물이며, 느껴지는 것은 슬픔뿐일 때가 있다. 그때 삶은 그냥 아픔이다. 몸의 아픔은 약으로 치유되지만, 마음의 아픔은 약도 없다. 그땐 모든 것이 거짓이면 좋겠다 싶다. 차라리 보이는 모든 것이 가짜이면 좋겠다 싶다. 그럴 때가 있다. 나도 그랬다. 2009년이다. 교통사고로 다리가 불편하신 어머님께서 두 다리를 수술하셨다. 성공적인 수술이 끝나고 멀지 않아, 내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두개골 골절, 얼굴 안면 골절, 발목 골절 등으로 1년 동안 7번의 크고 작은 수술을 했다. 치료가 거의 끝날 무렵, 아버지께서 암 .. 2019. 9. 26.
유대칠 암브로시오의 성경 읽기 3 2019년 9월 3일 저녁 광주에서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 또한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 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요한 복음 1장 1-5절) 모든 것의 처음엔 ‘뜻’이 있었다. 그 ‘뜻’은 홀로 있지 않다. 더불어 있다. 그것을 ‘뜻’으로 품은 이와 더불어 있다. ‘뜻’이 앞서는 것도 아니고, ‘뜻’을 품은 이가 앞서는 것도 아니다. ‘더불어 있음’은 더불어 있음부터 더불어 있는 것일 뿐이다. 어느 것도 더 앞서 있는 것도 더 뒤에 있는 것도 아니다. 어.. 2019. 9. 25.
유대칠 암브로시오의 성경읽기 2 2019년 8월 30일 금요일 새벽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마태오 복음 24장 42절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먼길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 분부한다. 그러니 깨어 있으라고 분부한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잡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 2019. 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