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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존재론174

더불어있다는 것의 의미 철학은 뒤에 서 있다. 앞에 있지 않다. 나란 있음의 주체도 치열한 생각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지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다. 주체만이 자기 철학을 가진다면 철학은 삶의 뒤에 찾아온다. 돌아보면 그때서야 망각 속에 있던 그 주체를 깨우치듯, 그리고 그 깨우침에서 철학이 오듯이, 철학은 분명 삶의 뒤에 온다. 그 돌아봄으로 알아야할 참됨이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든지 아니면 살아가면 일구어가는 후천적인 것이든지 그 참됨을 향할 그 주체는 바로 여기 나다. 자연과학이 아무리 앞서가도 그 참됨을 향하는 길의 얼마나 다양하더라도 그 주체는 나다. 그런데 그 주체란 것이 그리 보면 바로 '나'인데. 그 나란 있음의 무엇임은 나만의 몫이 아니다. 나란 존재의 무엇임은 나와 더불어 사는 너와의 만남에서 일구어지고 자라.. 2019. 10. 25.
유대칠의 철학사 이야기 1 젠장. 방금까지 제법 길게 적은 글이 날아갔다. 이것도 나의 잘못이다. 다시 적어본다. 돌대가리로 살기 힘들다. 고대 동아시아 사람들이 공동체를 만들고 살아가면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지배자가 등장했다. 작은 무리를 이루고 살아갈 때는 가족 단위일 수 있지만, 이젠 그 정도의 작은 단위가 아닌 남들과 같이 살아가는 곳에선 어쩔 수 없이 법이 필요하고, 그 법을 유지할 권력이 필요했다. 당연히 지배자가 등장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지배자는 처음엔 그저 힘이 쎈 강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힘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 힘만으로 자기 ‘권력’의 ‘권위’를 정당화할 순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천명’, 즉 하늘의 뜻에 따라서 지배자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였다. 물.. 2019. 10. 17.
유대칠 암브로시오의 성경 읽기 11. '당당한 행복'이란... 2019년 10월 9일 저녁... 한글날... “하느님, 저를 지켜주소서. 당신께 피신합니다. 주님께 아룁니다.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밖에 없습니다. 이 땅에 있는 거룩한 이들과 위대한 이들에게 저의 온 마음이 쏠립니다. 다른 신들을 붙좇는 자들의 고통이 크기에 저는 그 신들에게 피의 제사를 바치지 않으며, 그 이름들을 제 입술에 올리지 않습니다.” 시편 15(15) 1-4절 하느님에게 피한다는 것, 참다운 존재에게 피한다는 것, 참다운 행복에게 피한다는 것, 그 품에 있다는 것,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돈을 신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것, 권력과 명예를 신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것, 그렇게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이기며 살아가려는 모든 욕심, 돈과 권력을 신으로 여기며 살아가려는 그 모든 .. 2019. 10. 9.
유대칠 암브로시오의 성경 읽기 10 - 불행하여라... 저밖에 모르는 이들... 2019년 9월 14일 추석 다음 날 토요일 오후 (200주년 신약성서를 봄)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대들, 부유한 사람들아! 그대들은 스스로 받을 위로를 받고 있으니. 불행하여라, 그대들, 지금 배부른 사람들아! 그대들은 굶주리게 되리니.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아! 그대들은 슬퍼하며 울게 되리니. 불행하여라, 모든 사람들이 그대들을 좋게 말하면!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에게 꼭 그와 같이 대했습니다.” 루가 복음 6장 24-26절 행복에 대한 의 선언에 이어서 불행에 대한 선언이 이어진다. 행복에 대한 선언은 과 더 자세히는 에 나온다. 행복에 대한 선언은 어쩌면 천국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가난한 사람의 공간이고 굶주리는 사람들의 공간이며, 우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베푸는 사.. 2019. 10.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