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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캄연구소394

참된 진리는 더불어 있음으로 우리와 함께 한다. (<대한민국철학사> 읽기) "선한 것을 이루려는 정의의 마음은 사랑의 분노다, 정의란 사회적 표현이다. 하느님이 창조한 선한 것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나의 눈 앞에 아파하는 너의 울음과 고통으로 달려감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정의다. 사회 가운데 선한 것을 이루려는 민중의 분노가 정의란 말이다, 그렇기에 정의는 정의롭지 않은 나, 부끄러운 나, 달려가지 않는 나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하고, 그 자각 이후 더 이상 부끄럽지 않으려는 실천이 따라야 한다. 487쪽 문익환이 향하려는 그 철학의 마지막 지향점은 부조리한 고난 속에서 울고 있는 지금 여기 바로 이 땅을 떠난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이 땅의 밖에 있는 하느님의 뜻이 아닌 바로 여기 이 공간, 바로 이 공간을 가득히 채운 민중의 눈물, 그 눈물로 달려가.. 2020. 4. 1.
중세철학사에 다가가기... 질송에게 다가가기... 저도 질송의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사실 많은 부분 참 불만이 많아요. 그런데 그의 연구들, 특히 철학사와 관련된 작업들은 거의 100년 전의 것입니다. 우리가 흔하게 질송의 책을 접하지만 질송의 철학사는 3.1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쯤 나온 책입니다. 그때 그가 철학사 작업을 했으니 말입니다. 그 사이 많은 중세철학계의 변화도 있구요. 저도 그 변화의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중세철학사 연구가이니 그의 100년 전 성과에 대하여 어느 정도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철학사라는 것이 역사학적 입장에 따라서 아주 많이 달라지거든요. 그게 객관적 사실의 모임이라기 보다는 사실 철학사관의 차이에 따라서 상당히 다르게 만들어지는 주관적 사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그 주관이 허무맹란한 상상의 것이 아닌 나름 .. 2020. 3. 30.
노동으로 나는 있고 무엇이 된다. 2020.03.25 나에게 연구... 책과 논문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는 노동이다. 노동자로 나의 노동이다. 내가 굳이 나를 철학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소개하는 것은 노동을 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나의 노동은 나의 생존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세상과의 대화다. 농부에게 농사는 노동이다. 그 노동으로 그는 생존의 문제, 자기 있음의 문제를 해결하지만, 동시에 그 노동 생산물로 세상과 대화한다. 그 대화 가운데 농부는 그냥 말뿐인 무엇이 정말 유의미한 뜻을 가진 무엇이 되어 우리 가운데 참여하게 된다. 노동은 그렇게 나를 있게 하고 나를 무엇을 우리 가운데 있게 하는 존재론적 행위다. 나는 바로 그 존재론적 행위를 하는 사람이고, 노동의 권리는 바로 그 존재론적 행위의 권리다. 소중한 권리다. 그 만큼 간절하다. .. 2020. 3. 25.
"사랑이 희망이다." <대한민국철학사> 읽기 3. 2020.03.22 하느님이 곧 사랑이다.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은 하느님을 닮아야 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무조건적 사랑이며, 인간의 사랑은 그런 하느님의 사랑을 닮아야 한다. 누군가를 어떤 이유가 있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사랑해야 한다. 하느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했고, 그것이 사랑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설사 인간이 누군가를 자신의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사랑한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사랑은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에서 '나'는 '너'를 어떤 다른 이유가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너'가 너'라서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하느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랑이다. 그런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477쪽 지금 우리는 참으로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 2020. 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