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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강학회100

우린 지금 어느 길에 서 있습니까? (더불어 신학으로 읽는 <지혜서>3) 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에 있어서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을 것이다. 2 미련한 자들의 눈에는 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재앙으로 생각될 것이며 3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이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의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 눈에 의인들이 벌을 받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은 불멸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 3장 1-4절) 기꺼이 마주하는 고난은 고난이 아닙니다. 부끄러움 속에서 부끄러움도 모르면서 누리는 기쁨에 비하면 달고 단 은혜입니다. 민중을 총칼로 죽이며 얻은 힘에 기생하여 누리는 기쁨보다 차라리 그 힘에 저항하며 누리는 고난의 길이 달고 단 기쁨입니다. 그것이 신앙이겠지요. 부끄러움도 모르고 부끄러운 길을 웃으며 가는 것보다 차라.. 2021. 3. 25.
선한 '나'로 우리 가운데 부활합시다. (더불어 신학으로 읽는 <지혜서> 2) 1 올바른 지각이 없어, 그들은 이렇게 뇌까린다. "우리 인생은 짧고 슬프다. 수명이 다하면 별수 없이 죽는다. 지옥에서 돌아온 사람을 아무도 본 적이 없다. 2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우연이었고 죽고 나면 태어나지 않았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의 코로 쉬는 숨은 연기와 다름이 없고, 우리의 생명이란 심장의 고동에서 나오는 불꽃에 불과하다. 3 불꽃이 없어지면 우리의 육체는 재가 되고 영혼은 하염없이 공기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4 때가 지나면 우리의 이름조차 잊힌다. 누가 우리가 한 일을 기억해 주겠느냐? 우리 인생은 구름 조각들처럼 지나가 버리고 햇볕에 쫓기고, 열에 녹아버리는 안개와 같이 흩어져 버린다. 5 인생의 하루하루는 지나가는 그림자, 한 번 죽으면 되돌아올 수 없다. 죽음이라는 도.. 2021. 3. 23.
더불어 살라 창조하셨습니다. (더불어 신학으로 읽는 <지혜서> 1) 13 하느님은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자들의 멸망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14 하느님은 모든 것을 살라고 만드셨으며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원래가 살게 마련이다. 그래서 피조물 속에는 멸망의 독소가 없고 지옥은 지상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다. 덕스러운 자들은 지옥을 모르며 15 의인은 죽지 않는다. 16 악인들은 행실과 말로써 죽음을 자초하고 죽음을 벗으로 생각하고, 죽지 못해서 애태우며 죽음과 계약을 맺는다. 그들은 과연 죽음과 한 패가 되기에 알맞은 자들이다. ( 1장 13-16절) 죽음과 절망의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죽음을 만들지도 않았고, 멸망을 즐기는 분도 아니십니다. 그분은 죽으라 우리를 만드신 것이 아니라, 살라고 우린 만드셨습니다. 우린 죽으라 만든 존재가 아니라, 살라 만든 존.. 2021. 3. 22.
하느님의 뜻을 다시 생각해봅시다. <모든 형제들> 읽기 11 3.1 혁명의 날! 한국 가톨릭 교회는 조용했습니다. 오히려 강요된 침묵이 교회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일본의 눈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강자의 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어나는 민중의 외침에 거리를 두고 오히려 대죄라며 막아섰습니다. 치욕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종교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정의를 위하여 일어나는 힘이 되어야 합니다. 종교가 강자의 뒤에 숨어 있다는 것, 민중의 아픔에 고개 돌리고 있다는 것,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자기 종교의 이득을 위한 것이라며 오히려 그 악조차도 악인지 모른다면 문제는 더욱더 심한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미얀마/버마 가톨릭교회 역시 이러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에 인용된 미얀마/버마 가톨릭 평신도 활동가 마웅 요한 박사의 말을 읽어봅시다. .. 2021. 3.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