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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사누스의 행복해지는 법, 불행해지는 법 쿠사누스의 행복해지는 법, 불행해지는 법 누구도 불행하고 싶지 않다. 불행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항상 어떤 식이든 행복을 추구한다. 그 행복의 모습이 저마다 다른 모양일 수 있지만 적어도 그것이 삶의 목표인 것은 분명하다. 누군가 목숨을 걸고 정의를 위하여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비록 그 삶의 모습이 남들의 눈엔 고통으로 보인다고 해도, 그의 삶에선 행복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일 것이다. 누구도 불행을 추구하진 않는다. 불행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행복의 모양은 참으로 다양하다. 누군가는 많은 불편에도 불구하고 봉사의 삶을 살아가며 행복을 느낀다. 또 다른 누군가는 아쉬울 게 없는 멀쩡한 의사인데도, 굳이 전쟁터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을 치료하는데서 행복감을 느낀다. 참으로 다양하다.. 2019. 12. 19.
철학, 철학사 그리고 나는... 한국에서 철학 공부한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많은 경우 철학사를 열심히 공부한다. 철학사를 만드는 사람들도 결국 이미 있는 철학사의 사관도 그리 다르지 않은 입장에서 철학사를 적어간다. 그냥 이미 있는 생각의 한국어 버전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왜일까? 박동환의 에 상식 같은 이야기가 있다. 철학사를 읽는다고 철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맞는 말이다. 철학사를 읽는 것은 그냥 철학사를 쓴 이의 사관에 의하여 쓰인 하나의 상품을 소비하는 행위다. 그것이 생산의 행위로 이어진다고 해도 그 생산을 철학이라 부르기는 힘들다. 철학은 철학사를 쓰는 행위다. 읽는 행위가 아니다. 쓴다는 것을 질송이나 들뢰즈 혹은 플라쉬와 같은 이들의 철학사를 한국 버전으로 만들어낸다는 말이 아니다. 질송은 자신의 신념 속에서 철학사를.. 2019. 12. 19.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복자 황일광 시몬(1756~1802)는 백정이었습니다. 그가 말합니다.“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합니다.”조선 시대 백정의 삶을 아시나요. 신분제 사회의 가장 아래에서 살았던 이들입니다. 사람이지만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던 그런 사람들입니다. 삶 자체가 아픔은 그런 이들입니다. 예수님이 조선에 오셨다면 바로 그 백정의 공간에 오셨을지 모릅니다. 가장 아프고 가장 낮은 곳이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백정 황일관 시몬은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합니다"라고 합니다. 그가 살던 그 세상을 천당이라 합니다. 지금 우리와 너무나 다른 신앙으로 살아가던 이들입니다. 죽음이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이들입니다. 잔혹한 고문이 멀지 않은 이.. 2019. 12. 18.
하느님의 나라는 울보의 나라일지 모릅니다. "교황은 전쟁이 '타인의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는 곧 “이기심, 자만, 증오, 그리고 타인을 파괴, 배제, 희화화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권력 강화 및 지배 욕구를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53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중 https://www.vaticannews.va/)나와 다른 타자, 그 타자를 그저 자신의 경제적 이득 속에서만 본다면, 그저 자신의 수단에 그칠 뿐입니다.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닌 그저 수단말입니다. 타자를 그저 수단으로 삼는 사람에게 온전한 신앙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신앙까지 가지 않아도 됩니다. 당장 우리가 만나고자 하는 온전한 사람다움이란 것이 그들에게 있을까요?그를 있는 그대로 그로 마주한다면, 그는 나의 .. 2019. 1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