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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철학사63

이곳은 결핍의 공간이다. (<대한민국철학사> 읽기 2020.04.20) "민중이 살아가는 이곳은 결핍의 공간이다. 그러나 함석헌은 그 비워진 공간을 빛이 없는 공간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빈 맘에야 밝음이 있다고 한다. 빛은 그 자체로 충만하고 완전함을 의미한다. 그 빛은 제한도 없고 차별도 없어야 한다. 그런 빛이어야 참다운 빛이다. 그런데 빛은 빛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오히려 빛이 아니다. 빛으로 가득 한 공간에선 빛이 빛으로 있지 못한다. 빛을 너라고 불루줄 수 있는 곳, 빛이 뜻을 품을 수 있는 곳은 오히려 빛이 비워진 곳이다. 자기 이성과 자기 욕심으로 가득 채워진 곳에서 타나는 '나' 아닌 '남'일 뿐이며, 때론 '나'와 싸울 '적'이다. '나'의 외부에서 찾아오는 '빛'은 '남'이거나 '적'이다. 다투어야 한다. '나'란 존재는 지거나 이기거나다." 361쪽 돌.. 2020. 4. 20.
결핍의 사랑? (일간유대칠 2020.04.17) 고난은 우리의 삶을 죽음으로 이끌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싹을 향한 애씀이고 잎을 내기 위한 애씀이며 과실을 햔한 애씀이다. 이런 고난으로 우리의 인생은 외대해진다. ( 365쪽) 아픔의 주체가 행위의 주체가 될 때, 역사는 민주이란 주체로 움직이게 된다. 이런 저런 명상으로 현실을 도피하며 신선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난의 한 중앙에서 그 고난의 중심에 설때, 그 고난의 주체가 될때 고민의 주체가 되고 궁리의 주체가 된다. 우리는 이렇게 살라는 책이 많다. 구체적으로 이렇게 메모하고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투자하고 이렇게 암기하라는 다양한 명령들이 가득한 책 속에 산다. 스스로 궁리한 나의 답을 생각하기 보다 전쟁터에서 장군의 명령을 기다리는 병사와 같이 말이다. 그런데 그 책들이 읽어 .. 2020. 4. 17.
'부활'과 '자기내어줌' (<대한민국철학사> 읽기 2020.04.12) "나란 존재가 타자의 자기 내어줌으로 존재한다면, 나 역시 내주어야 한다. 그렇게 더불어 산다. 그렇게 더불어 삶으로 아름다운 생명이 가능하다." 536쪽 아파트 화단, 조용히 쭈그리고 앉아서 개미집이랑 이런 저런 풀들이랑 더불어 있는 그 모습을 보고 있다. 개미집은 제법 커지고 힘 있던 풀은 사그러지고 또 옆 자리 다른 풀은 없던 것이 생겼다. 보이지 않을 때는 없지만 막상 보고 있으면 하나의 우주이고, 하나의 거대한 더불어 있음의 장이다. 그 작은 생명 가운데 그 어느 것이든 그저 홀로 있지 않다. 죽어 잡혀가는 어느 벌레의 사체, 그 사체를 나르는 개미를 보면 잔인한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또 무엇인가를 위해 죽어지고 사라지고 녹아들어 다른 것을 위한 자신이 될 개미를 떠오르게 되기도.. 2020. 4. 12.
참된 진리는 더불어 있음으로 우리와 함께 한다. (<대한민국철학사> 읽기) "선한 것을 이루려는 정의의 마음은 사랑의 분노다, 정의란 사회적 표현이다. 하느님이 창조한 선한 것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나의 눈 앞에 아파하는 너의 울음과 고통으로 달려감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정의다. 사회 가운데 선한 것을 이루려는 민중의 분노가 정의란 말이다, 그렇기에 정의는 정의롭지 않은 나, 부끄러운 나, 달려가지 않는 나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하고, 그 자각 이후 더 이상 부끄럽지 않으려는 실천이 따라야 한다. 487쪽 문익환이 향하려는 그 철학의 마지막 지향점은 부조리한 고난 속에서 울고 있는 지금 여기 바로 이 땅을 떠난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이 땅의 밖에 있는 하느님의 뜻이 아닌 바로 여기 이 공간, 바로 이 공간을 가득히 채운 민중의 눈물, 그 눈물로 달려가.. 2020.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