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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철학사63

이 절망의 터에서 희망을 본다. <대한민국철학사> 읽기 1 "고난은 죽으라 있는 것이 아니다. 고난은 존재론적으로 재난이 아니다. 스스로의 생명을 더욱 더 단단하고 아름답게 하는 시간이다. 사람이 스스로 종이 되어, 보이는 주인이거나 보이지 않는 주인이거나 주인을 가정해 고개를 숙이고, 그것이 운명이라며 살아가는 것은 없는 원인에 고개 숙인 결과다. 스스로 자기 원인이며, 스스로 자기 결과인 사람에게 그런 종살이, 그런 숙명론은 가장 큰 병이다." ( 404쪽) 고난의 시간입니다. 지금은 고난의 시간이 분명합니다. 오늘 새벽 저는 스페인의 한 신부님께서 자신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으며, 자신으로 인하여 성당은 바이러스에 오염되어 출입이 통제된다면서 집에서 신앙 생활을 부탁한다는 말씀을 나누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이 바이러스로 하느님의 품에 안긴 신부.. 2020. 3. 16.
지금 여기는 '절망의 터'가 아니라, 내 '희망의 터'다. (<대한민국철학사> 한줄 읽기) 함석헌 철학의 시작은 ‘지금 여기의 긍정’이다. 삶의 긍정이고 역사의 긍정이다. 바로 여기 무엇인가 끝없이 부족한 결핍의 공간에 대한 긍정이다. 함석헌은 외적 초월이 결국은 민중을 무시하는 데로 이어질 것임을 알았다. 359쪽 지금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항상 더 많은 것을 보면서 무엇이 더 없는지 지적 당하는 삶을 살았다. 과거 적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것을 해결해야하고,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버려졌습니다. 버려지지 않기 위해 항상 누군가의 입만 보고 살았다. 지적 하는 입, 너는 이렇게 부족하다는 입, 너는 온통 부족하다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모역하는 입, 그 입만 보고 살았다. 그 입에서 나온 것을 답이라 생각하면 삶은 조금 편했다. 그래서 그 입이 답이 .. 2020. 3. 14.
'너의 아픔'은 '우리 있음의 터'다. '만남의 터'다. (대한민국철학사 한 줄 읽기) 철학의 자리는 고난의 자리다. 철학은 자기 소리를 내는 것이다. ‘자기 무시’ 가 민중을 침묵하게 하는 힘이 있다면, 철학은 자기 소리를 내게 한다. 368쪽 사악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만 있다면, 마스크가 아니라, 방탄조끼를 입고 무장을 하며 살아도 불안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나는 참으로 많은 무시와 조롱을 받았지만 또 나를 지금까지 있게 한 고마움 또한 너무나 많았다. 나란 존재는 어쩌면 그 고마움의 순간이란 조각들이 이른 그 무엇일지 모른다. 나의 존재 자체가 이미 너를 불러 있고 우리 속에서 있을 수 밖에 없는 그 무엇이란 말이다. 그러나 사악한 이들도 있다. 이 와중에도 돈 욕심에 타인의 불안이나 아픔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이 불안을 무지하고 무식한 이의 어리석음 정도.. 2020. 3. 14.
마스크 뒤로 숨은 불안한 나 (일간유대칠 22호 2020.03.10) 마스크로 막고 싶은 것은 불안이다. 그냥 불안한 것이다. 나의 밖 모든 것을 믿지 못하고 살아왔다. 노력해서 살아도 엉뚱한 이가 낚아채고, 세상은 그것을 성공이고 세상사는 방법이라 말했다. 누구의 말도 믿지 못하고 믿을 것은 불안해하는 나란 존재의 생존 욕구 뿐이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는다. 손소독이 중요하다 해도, 이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나의 방어망이 필요하다. 마스크다. 그래서 마스크가 필요하다. 정부의 말도 믿지 못하고, 시장의 말도 믿지 못하고, 그나마 자신의 불안 해소 욕구를 가장 쉽게 자극하는 근거 없는 헛소문 만이 마스크 안으로 들어올 뿐이다. 마스크로 막고 싶은 것은 불안이다. 신학 전문가의 말도 우리네 삶과 멀었다. 우리네 삶, 곳곳에 생존에 대한 욕구로 가득.. 2020.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