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신학199 신비주의에 대하여... 2020 08 28 신비주의...내가 쓴 학부 학위 논문을 가지고 졸업 전... 한 교수 신부님에게 보여 준 적이 있다. 그때 그 교수 신부님은 몇 일이 지나 나에게 이런 논문은 학부 논문이 아니라 석사 학위 논문이라고 해도 될 정도라고 하셨다. 쿠사누스의 철학이 가지는 중세 철학와 근대 철학의 요소와 쿠사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비주의를 비교하며 당시 쿠사누스에 대한 이런 저런 해석에 대하여 나름의 해석을 제시한 논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나의 대학 4학년은 나름 치열했다. 그 논문의 일부는 에크하르트에 대한 것이었고 이 부분은 훗날 에크하르트에 대한 나의 논문으로 한 학술지에 투고되었다. 신비주의에 대한 나의 해석은 대체로 학부 시절에 시작하여 석사 학위 논문 이후 정립된다. 신비주의란 이성을 벗어난 것을 두고 이야기.. 2020. 8. 28. 잡초 한 포기의 하느님 2020 08 22 잡초 한 포기의 하느님 하느님에 대하여 말하기는 매우 힘들다. 그분 계심이 나의 언어에 한정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의 언어는 나의 생각의 반영이고, 나의 생각은 항상 나의 욕심 속에서 한정되기 쉽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눈 앞에 작디 작은 잡초 하나 하느님 손길 아니 있는 곳이 없지만 나의 욕심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나의 말로도 그 작은 잡초 하나의 몸짓에서 하느님을 그려내지 못한다. 그러니 나의 하느님 역시 저리 작게 계시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욕심 속 나의 시선이 아닌 저 작은 잡초가 되어 본다. 마땅히 누군가 관리해 주는 것도 아니다. 제법 좋은 식물원의 관리 받는 식물과 너무나 다르다. 줄을 서 자라고 있지도 않고 여기 저기 참 어지럽다. 질서 없이 그저 여기 저기 참 혼돈 속에 있다. 조.. 2020. 8. 22. '초월'이란? 하느님은 누군가의 하느님으로만 계시지 않는다. 그들만이 하느님을 독점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자신들만 하느님을 독점한다면서 자신들과 다른 모든 이들을 악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게 하느님 이름으로 우리를 분열시키고 그 가운데 몇몇은 바로 그러한 분열됨을 이용해 권력과 부유함을 누리기도 한다. 그런데 바로 그런 분열의 주인공들이 대체로 악마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자신의 이기심을 종교의 언어로 화장한 사악한 악마 말이다. 그런데 그 악마를 천사인듯 옹호한 것도 교회라는 것을 생각하면, 답답한 일이다. 우리 교회는 그렇지 않다는 자기 도피처로 숨는 것도 분열이다. 결국 우리의 일이다. 같이 분노해야한다. 도려낼 것은 도려내야 한다. 나에게 '초월'이란 '벗어남'이다. 지금 '나'와 '우리편'이란 아집.. 2020. 8. 22. 책임을 져야 한다. 자유의 값이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주체의 값이다. (<대한민국철학사> 읽기) "책임을 져야 한다. 자유의 값이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주체의 값이다. 그 고난 가운데 자유의 값을 지고, 주체의 값을 디고,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나 혼자 너를 모두 지우고 홀로 있는 자신을 보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 가운데 너에게 나를 보고 나에게 너를 보면서 상호주체성 속에서 더불어 있는 나를 보라는 말이다." 385쪽. 스스로를 돌아본다는 것, 우리 가운데 너 없이 나만을 홀로 돌아본다는 것은 자칫 나만의 이기심을 재검토하는 시간이 될 때가 있다. 그곳에 너는 없고 우리도 없다. 나로 인하여 아픈 너도 없다. 그저 나의 앞섬만이 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된다. 참된 자유는 나만의 방종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 가운데 너와 더불어 있는 나란 존재가 져야하는 짐이다. 우리 가.. 2020. 7. 21. 이전 1 ··· 35 36 37 38 39 40 41 ··· 5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