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신학199 나는 응원이 필요하다! (일간유대칠 2020.07.70) 잠을 자면 게으른 것 같다. 그래서 잠이 와도 글노동을 했다. 그러면 혼자서는 왠지 노력하는 듯이 보여서 말이다. 돈을 조금 덜 벌어도 스스로는 할 만큼 했다는 위안이 된 것 같다. 그러나 몸은 무너졌다. 나는 잠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란 나의 사정을 아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나를 잠이 없는 사람으로 안다. 몸이 무너지고 힘들어지니 가장 먼저 힘든 것은 맘이다. 몸이 힘들어도 알아주는 이도 없고 응원하는 이도 없다. 돈을 벌지 않으면 수고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본주의사회다. 그래서 나는 죽으라 노동하는데 수고했다는 말을 듣지도 못한다. 있지만 있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 즉 무시되는 것이다. 없는 것으로 여겨진단 말이다. 무시받으며 좋은 사람은 없다.. 2020. 7. 20. 하게 되어지는 것, 함과 됨의 하나됨, 그 가운데 우리가 있다. 밀거나 밀리거나 이 둘로 세상을 그렸다. 행하거나 당하거나 말이다. 신은 행한다. 신은 당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의 당함, 라틴어로 passio, 즉 수난이란 말이 충격적이다. 신은 어떤 당함도 없이 순수하게 행하기만 해야 한다. ‘부동의 원동자’를 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은 스스로는 어떤 것으로 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으며 오직 다른 것을 움직이게 할 뿐이다. 이런 존재가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신이었다. 인간의 영혼 역시 이와 같다. 순수한 인간의 영혼은 육체에 당해서는 안 된다. 육체를 지배해야 사람은 사람다운 존재가 된다. 헬라의 철학에서도 동아시아의 철학에서도 중앙아시아의 철학에서도 대체로 이런 주장들이 강하였다. 마땅히 당해야하는 육체에 당하면 사람은 쾌락에 빠져들어 제대로 행복하지 못하고 사람다.. 2020. 7. 16. 나는 이론의 종이 아니다. 이론은 잠시 내 생각과 같아보이고 내 인생의 답으로 느껴지지만 그것이 유일한 하나의 답으로 생각하는 순간 이제 이론은 나의 주인이 된다. 이론은 나의 주인이 아닌 종이다. 우리의 봉사자다. 그 시절 나와 우리를 위해 쓰이다 사라지는 그런 고마운 종, 봉사자 말이다. 그래서 나는 무슨 주의도 아니다. 그 주의가 나를 지배하고 나의 시선을 이끄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철학노동자가 아니다. 쉼없이 이론을 고민하고 소개하고 살지만 이론의 종이 될수는 없다. 이론에 대한 아집은 쓸데없는 순결주의자, 이 세상에 없는 완벽주의자, 이론의 온전한 구현자를 상상하고 그 상상의 인물이 아닌 나를 낮춘다. 나를 부정한다. 상상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이론의 온전한 구현자는 없고 이론은 항상 진화해야하면 이론의 이상향을.. 2020. 7. 12. 지금 우리에게 철학은 쓸모있는가? 철학이 어디에 쓸모가 있었을까? 철학은 물리학이나 화학 혹은 생물학 등을 열심히 연구한 이후에 한 학문인가? 그렇지 않으면 정치학이나 법학 등을 열심히 연구한 이후에 익히게 된 학문인가? 사실 철학은 대학에 있지 않았지만, 대학에 들어와서는 기초학의 역할을 수행했다. 예를 들어, 18세기와 19세기 형이상학이란 교과를 보면 책의 가장 앞에 간단하게 형이상학이나 철학을 정의하고 이후 엄청나게 간단하게 철학사를 정리한다. 너무 간결한 정리라서 그것을 철학사라고 부르지도 민망하다. 이후 존재론에서 있는 것 일반을 다룬다. 이어서 우주론, 철학적 심리학, 철학적 신학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것으로 있는 것을 다루었다. 존재론은 철학적 신학을 익히기 위한 기초학이었다. 그리고 철학이 다른 학문에 대하여 그와 같았다... 2020. 7. 11. 이전 1 ··· 36 37 38 39 40 41 42 ··· 5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