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존재론174 바흐와 보에티우스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참 편해진다. 오늘 우연히 너무나 익숙했던 곡을 다시 듣게 되었다.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3번 D장조 BWV 1068(Orchestral Suite No.3 in D Major BWV 1068)'이다. 어딘가 한 번을 다 들은 곡이다. 음악을 중세 철학자와 신학자들은 수학의 갈래에서 생각했다. 보에티우스는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음악이라 보았다. 사실 음악은 매우 수학적이다. 그렇게 수학적 사유의 범주 아래에서 음악은 다루어진 것이 고대와 중세의 지중해 연안 사상가들의 생각이었다. 우주는 매우 수학적이고 기하학적이다. 불규칙적이지 않고 매우 규칙적이다. 그 규칙성에 우린 달력을 만들기도 하고 하루를 헤아리기도 .. 2020. 11. 21. 십자가의 예수는 여전히 외로울지 모릅니다. 예수가 죽던 날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림은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를 바로 세우는 장면입니다. 어둠 가운데 여러 사람들이 숨어 있으며 빛은 예수를 향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발, 못 박힌 그 발 부근, 그 시대의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매우 슬픈 얼굴로 그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베레모를 쓴 그 사람은 바로 이 그림의 화가 램브란트입니다. 그는 슬픈 얼굴로 이 비극의 장면에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과거로 돌아가 그 장면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의 삶에 예수의 십자가, 그 고난의 모습이 현실로 항상 그에게 머물고 있다는 의미일 수 있겠습니다. 위안부 할머니에게 과거의 그 아픔은 단순히 과거의 한 아픔이 아니라, 여전히 현실로 진행되는 아픔입니다. 육체의 아픔과 달리 영혼의 .. 2020. 11. 17. 행복하여라 7 참 평화를 위해 싸우겠습니다. 복되어라,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들이라 일컬어지리니. (마태오복음 5장 9절) 평화를 이룬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힘센 사람이 등장하여 힘없는 사람 여럿을 조용하게 만들면 그냥 밖에서 보면 평화가 이루어진 듯이 보입니다. 한 명의 주인과 여러 명의 노비들이 사는 것도 그러할 것이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은 과연 평화로운 나라였을까요? 양반들에겐 평화의 나라였을지 모릅니다. 자기들끼리 당파 싸움을 했지만 그런 정치권력 싸움 없이 지내면 큰 문제없이 살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조선의 많은 노비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양반끼리 일어난 여러 소송 가운데 하나가 노비 소유권입니다. 서로 다른 주인의 노비들 사이에서 아기 노비가 태어나면 남노비 주인의 소유인지 여노비 주인의 소유.. 2020. 11. 14. '하나'의 목숨으로부터 '전체'의 목숨을 향한 '전태일'이라는 '다리' 누구나 자신의 세상을 살아갑니다. 비슷한 시대를 산 노가다 일꾼 저의 아버지와 대기업 삼성의 이건희는 같은 세상을 살았다고 말하긴 힘들 것입니다.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았고 살고 있습니다. 그 세상에서 한 개인은 참으로 유한합니다.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유한합니다. 나의 끝을 넘어선 아픔에 대해선 정말 말 그대로 남의 것이지 나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당연시하고 살아갑니다. 나의 배고픔은 그리도 아프지만 남의 배고픔은 철저히 남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자기 속에 유한하게 살아갑니다. 자신의 말이 얼마나 남을 아프게 하는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수년 전 한 친구는 지금 생각도 기억도 나지 않은 이야기를 저에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너 같은 지방대에 사라진 철학과 출신에 지금은 어디에도 소속이.. 2020. 11. 13. 이전 1 ··· 3 4 5 6 7 8 9 ··· 4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