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더불어존재론174

행복하여라 2 위로가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복되어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으리니. (마태오 5장 4절) 벗어나기 힘든 무력감에 홀로 슬플 때가 있습니다. 이런저런 사회적 부조리에 무력하게 당하는 자신의 모습에 홀로 슬프기도 합니다. 아무도 자신의 손을 잡고 그 억울함에 더불어 함께 분노하지 않는 그 홀로 됨에 좌절의 슬픔을 느끼기도 합니다. 물론 이별과 같은 매우 개인적인 사정으로 홀로 슬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적 사연의 슬픔도 더불어 옆에서 울어주는 이가 없다면 그 슬픔은 더욱더 깊어집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이 모든 슬픔은 슬프고 싶어 슬픈 것이 아닙니다. 슬퍼지게 된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스스로 손들고 나가서 슬픈 것이 아니라, 슬프고 싶지 않지만 그렇게 된 것입니다. 당한 것입니다. 사회적 부조리는 그것으로 누군가는.. 2020. 11. 6.
역사의 주인공은 더불어 있음의 거대한 흐름이었다. (이응노의 군상 1986년 작) 이응노라면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1986년 작품인 이다. 심지어 나의 작은 휴대 아이패드의 화면이 바로 이 작품이라면 내가 얼마나 이 작품을 아끼고 가까이 두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그러하지 않지만, 복재 그림이라도 하나 나의 방에 걸어두고 싶다. 이응노의 삶에 대해선 굳이 이야기하지 않겠다. 그의 삶은 한국 현대사의 슬픈 비극의 한 모습이다. 독재로부터 거부당한 예술인으로 그의 삶은 쉽지 않았다. 그 쉽지 않은 고난의 시간들은 구세주를 찾게 된다. 그 고난은 비록 그가 직접 그 공간에 있지 않았지만 광주의 비극에서 극대화된다.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그는 비록 그 공간과 그 시간에 더불어 있지 않았지만 그는 광주의 비극에 더불어 있었고 그 이후 그의 작품은.. 2020. 11. 6.
이 시대의 세례자 요한은 분노하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마르코에 따르면 ΚΑΤΑ ΜΑΡΚΟΝ 유대칠 암브로시오 옮기고 풀이함 1.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Ἀρχὴ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Initium evangelii Iesu Christi Filii Dei.) 2. 예언자 이사야의 글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라! 나의 심부름꾼을 너희에게 보내니, 그가 너희의 길을 마련할 것이다. (Καθὼς γέγραπται ἐν τῷ Ἠσαΐᾳ τῷ προφήτῃ· Ἰδοὺ ἀποστέλλω τὸν ἄγγελόν μου πρὸ προσώπου σου, ὃς κατασκευάσει τὴν ὁδόν σου· Sicut scriptum est in Isaia propheta: “Ecce mitto angelu.. 2020. 11. 1.
붓다의 마지막 가르침,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대장장이 쭌다의 공양으로 싯다르타는 눕게 됩니다. 좋은 마음으로 함께 하려 한 공양이 싯다르타의 마지막을 부르게 됩니다. 싯다르타는 자신의 마지막에 쭌다를 걱정합니다. 사람들이 그의 탓을 하며 어찌 하나 걱정을 합니다. 싯다르타는 자신의 제자 아난다에게 부탁합니다. "이보시오, 아난다. 누군가 쭌다에게 이와 같이 말한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요. '쭌다여! 그대의 공양으로 스승께서 마지막 열반에 이르게 되었고, 이 모든 것이 그대의 실수 때문이오!' 그러나 쭌다의 슬픔을 이와 같이 말해주시오. '친구 쭌다여! 그대의 공양을 마지막으로 드시고 스승께서는 열반에 드신 것은 그대의 공덕이며 행운입니다. 이보시오, 쭌다여, 나는 이 말씀으로 스승이신 부처님에게 직접 들었소'" (마하빠리닙바나 경 4,42) 싯다르타.. 2020. 1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