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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463

결국 나와 너의 평등한 관계입니다. 더불어 사는 것이 힘겨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2020년 더불어 마주 보기 힘들지만 사실 더불어 산다는 것이 꼭 물리적으로 같은 자리에 산다는 것은 아닙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더불어 살 수 있습니다. 멕시코에 사는 저의 친구는 멕시코 사람이고 멕시코에 살고 있으며 한국에 온 적도 없지만 저와 더불어 있습니다. 힘든 시기 저의 든든한 응원이 되어 주었습니다. 더불어 살기 힘든 세상이란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힘겨워하는 세상이란 말입니다. 과거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타인은 지옥이란 말이 이런저런 철학적 설명 없이 그냥 그 말의 문법적 뜻으로 다가오는 세상입니다. 더불어 살아감의 소중함보다는 다투고 싸우고 자신과 조금만이라도 다르면 더불어 있지 않은 그러한 삶에 더 익숙해져 버린 그런 세.. 2020. 11. 25.
지금 종살이를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더불어 신학과 복음 읽기 2)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마태오복음 6장 24절)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루카복음 16장 13절) 예수는 자유를 주기 위하여 오신 분이십니다. 자유란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일제강점기 우리의 독립운동가는 일제 강점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하여 싸우셨습니다. 자유란 그렇게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무엇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고 종속되면 그것은 노예입니다. 그런데 재물은 사람을 재물 자신에게 종속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2020. 11. 22.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없다. 환경을 생각하는 여러 신학적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교황은 2019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제20회 국제형법학회(AIDP) 총회에서 환경을 파괴하는 것을 일종의 죄로 규정할 필요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자연 파괴를 그를 생태 학살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강하게 비판하였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2015년 회칙 에서 이미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람을 하느님의 모상으로 이 세상을 지배하고 사용할 주체로 오랜 시간 여기던 종교의 생각들은 자연을 항상 타자로 여기게 만들었다. 타자 가운데도 무척이나 무력하게 사람의 사용을 기다리는 그러한 타자다. 그렇기에 종교적 자연의 무리한 사용과 파괴는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되지 못했고, 감성적으로 아파하는 정도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환경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입장은 매우.. 2020. 11. 22.
바흐와 보에티우스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참 편해진다. 오늘 우연히 너무나 익숙했던 곡을 다시 듣게 되었다.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3번 D장조 BWV 1068(Orchestral Suite No.3 in D Major BWV 1068)'이다. 어딘가 한 번을 다 들은 곡이다. 음악을 중세 철학자와 신학자들은 수학의 갈래에서 생각했다. 보에티우스는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음악이라 보았다. 사실 음악은 매우 수학적이다. 그렇게 수학적 사유의 범주 아래에서 음악은 다루어진 것이 고대와 중세의 지중해 연안 사상가들의 생각이었다. 우주는 매우 수학적이고 기하학적이다. 불규칙적이지 않고 매우 규칙적이다. 그 규칙성에 우린 달력을 만들기도 하고 하루를 헤아리기도 .. 2020. 1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