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518 하느님 처럼 시끄럽게... (함석헌과 더불어 신학 1) “세속의 일을 맡았다는 정치에서는 도리어 민(民)의 세기인 것이 청천백일 같아가는데, 정신계를 맡았다는 종교에서는 거꾸로 시대를 거스르는 것 같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계급주의·지배주의의 성직제를 고집하며 그것이 자랑이나 되는 듯이 알고 있다. 가을이 되도록 올챙이 꼬리가 못 떨어진 것은 부끄러움이요, 고통이지 자랑할 만한 복이 되지 못할 것이다." (함석헌) 과거 가톨릭 교회의 한 신부와 함석헌 선생 사이의 논쟁이 있었습니다. 지옥이 있는지 천국이 있는지 모른다는 함석헌 선생의 말이 충직한 가톨릭 사제에겐 그리 좋은 소리로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당시 개신교회에서도 모두가 함석헌 선생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극히 일부만이 그를 좋아하고 그의 지혜에 귀를 기울이곤 했습니다. 그는 무교주의자입니다.. 2021. 7. 20. '이끔의 주체'와 '따름의 주체' (더불어 철학 시작하기 6) 철학으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철학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경전이나 신의 가르침에 순응하며 산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순응은 나란 주체를 따름의 주체로 삼을 뿐 이끔의 주체로 살긴 못하게 합니다. 아니라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는 그렇게 확신합니다. 철학으로 사는 삶은 자기 이성으로 자기 본질을 이끌어가야 합니다. 물론 그 이끔에 자기 존재는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니 철학으로 사는 삶은 자기 삶에 있어 따름의 주체이며 동시에 이끔의 주체입니다. 이끔의 주체가 알아도 따름의 주체가 따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철학적으로 수많은 이론들이 나오고 그 이론들이 저마다 이상적인 사회를 이야기하고 완전한 자아를 설명하지만 제대로 이루어지긴 어렵습니다. 안다 하여 이끌리지 않습니다. 어느 것이 바른 .. 2021. 6. 14. 철학은 더불어 우는 목소리에 대한 기록이어야 한다. (더불어 철학 시작하기 5) 철학은 글공부가 전부인가? 조선 시대 지식인을 생각해보자. 그들 대부분은 글공부가 너무나 소중했다. 공자니 주자니... 이황이니 이이니... 그들의 삶 내내 그들의 이름은 단순한 누군가의 이름이 아닌 답의 이름이었고 그 답 가운데 누구의 답을 선택하면 그 답을 더욱더 단단히 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런 노력이 매우 순수한 것이라도 사실 조선 지식인들이 그들과 동시를 산 사회적 약자를 위하여 한 일은 매우 적다. 아무리 몇몇 학자들이 신분제의 문제점을 인식했다 해도 사실 그런 인식이 사회를 개혁하자는 분노가 되진 못하고 그냥 인식으로 그쳤다. 왜일까? 솔직하게 생각해 보면 조선 시대의 지식인들은 그 시대 자신이 인식한 그 사회적 문제에서 고난의 주체가 아니었다. 그들은 통치의 주체일 뿐이었다. 종종 양반들.. 2021. 6. 5. 나만이 정답이 아닙니다. (더불어 철학 시작하기 4) '아집'에서 벗어난다는 것, 그것은 참된 자유를 누린다는 것입니다. 가장 벗어나기 어려운 족쇄가 어쩌면 아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만이 답이고 나만이 위에 있고 나만이 앞서야 한다는 생각, 그것으로 부터 자유롭기는 참으로 힘듭니다. 오랜 수행을 한 수도자로 자신만이 답이라 생각하곤 합니다. 자기 수행만이 답이고 자기가 더 많이 깨우쳤고 자기가 더 많이 안다는 식으로 말이죠. 오랜 시간 철학을 공부한 이도 신학을 공부한 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참으로 건방진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아집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몰라도 아집에서 벗어나진 못한 것이죠. 마음 없이 어떤 것도 없고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 있다는 불교 교리가 있습니다. 바로 '유식사상'(唯識思想)입니다. 우리말로 조금 풀어 설명하면 .. 2021. 5. 19. 이전 1 ··· 21 22 23 24 25 26 27 ··· 13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