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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존재론174

나는 나란 있음이 그립다 (일간유대칠 9호 2020.01.22) 나는 나란 있음이 그립다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오캄연구소) 씀 빈집 기 형 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아니 있음'에서 '있음의 간절함'을 마주한다. '있음의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이미 아니 있지만, 있는 듯이 나를 지배한다. 사랑은 '더불어 있음'의 순간보다 사라진 이후 더 강하게 그 있음의 향을 드러낸다. 나란 있음은 있어야 할 것의 아니 있음 가운데, 그 있음을 그리워하는 서글픈 '홀로 있음'이다. 철학의 시작은 이와 같다. 마땅히 있.. 2020. 1. 22.
'더불어 있음'의 좋음 (2020/01/20) '더불어 있음'의 좋음 '더불어 있음'은 하나뿐인 좋음이 아니다. 나누어진 둘의 좋음도 아니다. 둘이 하나 되어 좋음이다. 그것이 참된 좋음이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좋을 순 없다. 그 홀로 됨의 끝엔 외로운 죽음 뿐이다. 그러나 세상이란 원래 홀로 뿐이라 믿는 이들이 있다. 자식도 어쩔 수 없는 짐이고 배우자도 짐이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자신과 같은 이상을 가지지 않으면 그저 짐이다. 다름과 같이 있는 것이 힘겨운 일이다. 더불어 있음의 좋음은 하나로 통일된 좋음이 아니다. 서로 다른 둘이 서로 다른 둘로 만나 행복합니다. 나와 다른 취향과 모습으로 행복한 그의 열심이 기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농사를 짓는 이와 요리사를 생각해 보자. 농사를 짓는 이의 까닭은 좋은 농작물이다. 요리를 하는.. 2020. 1. 20.
문익환의 발바닥 철학 (일간유대칠 6호 2020 01 18) 발바닥... 아래로는 험한 바닥을 위로는 무거운 몸의 무게를 지고 그 사이에서 힘들기만한다. 우리네 민중이 이와같다. 매번 그 시대의 모순 속에서 눈물을 일상으로 산다. 역사 속 고통의 주체이지만 역사의 주체도 철학의 주체도 되지못하고 그저 고난 속에서 아파했다. 이제 그들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철학해야한다. 철학의 대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논리 속 가난이 아닌 삶으로 힘겨운 그 가난이 철학의 주체이면 대상이 되어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아야한다. 발바닥 철학... 문익환의 발바닥 철학은 목사의 철학이 아니라 이 땅 모순 속 아파한 민중의 철학이다. 이제 내 몫의 생각은 내가 하고 내 몫은 삶은 스스로 지겠다는 것이다. 변두리가 아니 역사의 중심에서 말이다. 대학에서 철학은 무력한 글놀이 였다면 .. 2020. 1. 18.
'나'란 원소들이 모여 세상이란 전체를 이룬다. (일간유대칠 5호 2020.01.18) '나'란 원소들이 모여 세상이란 전체를 이룬다. 나는 모든 지난 삶의 시간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큰 사건 몇몇을 기억하며 산다. 그러나 나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분명 그때 그 시간 혹은 순간은 있었다. 20년 전 오늘 이 시간 나는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날 나는 분명 무엇인가를 했다. 그리고 그 일은 나름 그 순간 소중한 나의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나의 삶에서 나는 거의 대부분의 순간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기억하지 못하는 그 대부분의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너무나 익숙해서 기억되지 않지만, 그 익숙함의 결실이 지금의 나란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오히려 기억의 큰 순간들은 나답지 않은 것들이 많다. 나답지 않아서 기억한다. 어느 정.. 2020. 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