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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철학학교237

삶으로 다가오는 계시 쉽지 않다. 나름 열심히 살지만 주변에서조차 응원보다는 조롱이 더 흔하다. 날 믿는 이도 지지하는 이도 많지 않지만 그래도 혼자 살 수 없는 것이 삶이다. 더불어 살기보다 이기며 살라는 말에 익숙한 이들 가운데 나는 치열하게 싸우며 패배자가 되고있다. 이게 내 삶이다. 죽으라 할 일이 많지만 아무 하는 일 없는 이 사회의 쓰레기로 여겨지는 부지런한 쓰레기말이다. 그래도 치열하게 오늘도 부지런히 산다. 그게 나다. 그럼에도 나는 너에게 희망을 건다. 그게 바로 나다. 조롱과 무시의 낱말로 쓰인 이 힘겨운 삶이 나에게 계시로 다가온 바로 그것이다. 내 몫의 내가 되는 나의 과제다. 힘들고 아픈 내 삶의 몫이다. 내 있음의 일이다. 너와 더불어. 2019. 11. 1.
<형이상학> 읽기 2 유대칠의 바로 그 고전 - 형이상학 읽기 2 “다른 동물들은 인상과 기억으로 살아가지만, 그들은 경험을 가지지 못하는 것에 비하여, 사람은 기술과 이성의 작용으로 살아간다. 사람은 기억으로 부터 경험이 일어난다. 동일한 것에 대한 여러 기억들이 하나의 경험을 만든다.” (980b25-981a1) 한국말로 전달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여기에서 인상과 기억은 개별적인 지각에 가깝다고 생각하자. 나는 ‘이 자장면’과 ‘저 자장면’에 대한 감각 인간과 기억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영화 우뢰매를 보기 전 동생과 나와 함께 대구 신도극장 옆 중국집에 간 적이 있다. 아버지는 자장면을 두 그릇 주문하셨다. 나와 동생은 남기지 않았고, 아버지는 그냥 마치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닌 일상의 한 부분이라도 되는 .. 2019. 11. 1.
<형이상학> 읽기 1 유대칠의 바로 그 고전 - 형이상학 읽기 1 "모든 사람은 자연적으로 알기를 원한다. 그 증거로 사람은 감각을 즐긴다는 것이다. 그것의 쓸모를 떠나 감각 그 자체를 즐기며 그 가운데 다른 어떤 감각 보다 시각을 즐긴다. 실천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심지어 아무 것도 하려 하지 않아도 우리는 보는 것을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좋아한다. 그 까닭은 모든 다른 감각 가운데 우리는 시각을 통하여 가장 많이 알게 되며 사물들 사이의 차이를 구분하기 때문이다." (980a21-27)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말이다. 사람은 원래 알기를 원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근본적인 욕구란 말이다. 물론 성욕도 있고 식욕도 있다. 이것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부정할 수 없다. 수많은 이들이 이런 저런 길고 .. 2019. 10. 31.
중세의 철학과 지금의 나 2019년 10월 29일 - 왜 하필 성자인가? 중세 사람들은 이유가 참 궁금했다. 삼위일체라면 동일한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이 있다면 왜 굳이 성자의 육화를 통하여 성자에 의하여 구원 사업이 이루어진 것일까? 오세르의 윌리엄은 에서 이 문제를 묻는다. 왜일까? 윌리엄은 요한 복음서를 보라 한다. 요한 복음서에 의하면 성자로 인하여 이 세상에 창조되었다. 그를 통하지 않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 요한 복음서다. 그런데 그것이 도대체 이 문제와 무슨 소용인가? 생각해 보자. 성자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것은 창조 이후 재창조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다시 시작하기 위해선 처음과 같은 모양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처음 창조가 성자를 통하여 이루어졌으며, 재창조에서도 모든 이들은 성자를 통하여 새로워져야 한다. 이것이 윌리엄의.. 2019. 10.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