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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존재론94

나는 나의 두개골 가운데 바로 이 뇌이다. 뇌(Brain)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은 오랜 시간 우리는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엄밀하게 말해서 영혼이 생각한다고 믿어왔죠. 양심도 영혼의 몫이며 육체의 몫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영혼이 선하면 육체는 영혼의 지시에 따라서 선한 행동을 한다고 믿었죠. 육체의 최선은 영혼을 말 잘 따르는 것이고, 우린 영혼을 선하게 유지 혹은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혹시나 영혼이 육체를 따르게 되면 감각의 기쁨에 빠져 타락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아주 많은 종교와 철학이 리를 당연한 것으로 이해했다. 요즘 과거에 비하여 조금은 쉽게 정신과의원 혹은 병원을 찾을 수 있다. 그 만큼 과거에 비하여 많은 이들이 마음의 아픔을 병원에서 의학적으로 치료받고 있단 말이.. 2021. 8. 11.
'이끔의 주체'와 '따름의 주체' (더불어 철학 시작하기 6) 철학으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철학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경전이나 신의 가르침에 순응하며 산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순응은 나란 주체를 따름의 주체로 삼을 뿐 이끔의 주체로 살긴 못하게 합니다. 아니라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는 그렇게 확신합니다. 철학으로 사는 삶은 자기 이성으로 자기 본질을 이끌어가야 합니다. 물론 그 이끔에 자기 존재는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니 철학으로 사는 삶은 자기 삶에 있어 따름의 주체이며 동시에 이끔의 주체입니다. 이끔의 주체가 알아도 따름의 주체가 따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철학적으로 수많은 이론들이 나오고 그 이론들이 저마다 이상적인 사회를 이야기하고 완전한 자아를 설명하지만 제대로 이루어지긴 어렵습니다. 안다 하여 이끌리지 않습니다. 어느 것이 바른 .. 2021. 6. 14.
철학은 더불어 우는 목소리에 대한 기록이어야 한다. (더불어 철학 시작하기 5) 철학은 글공부가 전부인가? 조선 시대 지식인을 생각해보자. 그들 대부분은 글공부가 너무나 소중했다. 공자니 주자니... 이황이니 이이니... 그들의 삶 내내 그들의 이름은 단순한 누군가의 이름이 아닌 답의 이름이었고 그 답 가운데 누구의 답을 선택하면 그 답을 더욱더 단단히 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런 노력이 매우 순수한 것이라도 사실 조선 지식인들이 그들과 동시를 산 사회적 약자를 위하여 한 일은 매우 적다. 아무리 몇몇 학자들이 신분제의 문제점을 인식했다 해도 사실 그런 인식이 사회를 개혁하자는 분노가 되진 못하고 그냥 인식으로 그쳤다. 왜일까? 솔직하게 생각해 보면 조선 시대의 지식인들은 그 시대 자신이 인식한 그 사회적 문제에서 고난의 주체가 아니었다. 그들은 통치의 주체일 뿐이었다. 종종 양반들.. 2021. 6. 5.
나만이 정답이 아닙니다. (더불어 철학 시작하기 4) '아집'에서 벗어난다는 것, 그것은 참된 자유를 누린다는 것입니다. 가장 벗어나기 어려운 족쇄가 어쩌면 아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만이 답이고 나만이 위에 있고 나만이 앞서야 한다는 생각, 그것으로 부터 자유롭기는 참으로 힘듭니다. 오랜 수행을 한 수도자로 자신만이 답이라 생각하곤 합니다. 자기 수행만이 답이고 자기가 더 많이 깨우쳤고 자기가 더 많이 안다는 식으로 말이죠. 오랜 시간 철학을 공부한 이도 신학을 공부한 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참으로 건방진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아집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몰라도 아집에서 벗어나진 못한 것이죠. 마음 없이 어떤 것도 없고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 있다는 불교 교리가 있습니다. 바로 '유식사상'(唯識思想)입니다. 우리말로 조금 풀어 설명하면 .. 2021. 5. 19.